조선시대 육고역 중 하나인 테우리, 4대 걸친 정성 담긴 갓일
제주의 진가는 멋진 관광지에만 있지 않다. 중산간부터 바닷가까지 긴 세월에 걸쳐 주민들이 뿌리 내리며 살고 있는 곳, 바로 마을에서 더욱 멋진 제주를 만날 수 있다. 2025년 새해를 맞아 심규호 중국학회회장이 신발 끈을 질끈 묶고 제주 마을로 향한다. 심규호 회장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마을 이야기를 [제주의소리]를 통해 만나보자. [편집자 주]
테우리
조선은 말의 중요성을 알았다.
"나라의 중요한 것은 군사요. 군사의 중요한 것은 말이다."('태종실록'권18, 태종 9년 11월 임오)
"나라의 강약은 말에 달려 있으므로 임금의 부富를 물으면 말을 세어서 대답한다."('증보문헌비고'권125, 병고17, 마정조 / 이상 국립제주박물관, '제주말테우리' 26쪽 재인용)
"임금의 부" 운운은 세조의 발언인데, 그 전고라고 할 수 있는 '예기'의 구절을 보면 내용이 조금 다르다.
"임금의 부를 묻는 이가 있으면 토지의 너비를 헤아려 답하고, …… 서인庶人(백성)의 부를 묻는 이가 있으면 가축의 숫자를 헤아려 답한다(問國君之富, 數地以對.……問庶人之富, 數畜以對)."
과연 세조世祖다운 발언이다.

테우리는 목자의 제주 방언이다. 말을 모는 이는 말테우리, 소를 모는 이는 쉐테우리라고 한다. 말테우리의 삶이 어찌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되 조선시대 육고역六苦役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목자, 즉 테우리였음을 상기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힘든 일, 고된 삶을 살아야만 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육고역은 목자牧子, 답한沓漢, 선격船格, 과직果直, 잠녀潛女, 포작鮑作을 지칭하는데, 19세기에 들어와 아병牙兵, 목자牧子, 방군防軍, 과직果直, 선격船格, 답한沓漢 또는 포작鮑作, 답한沓漢, 목자牧子, 防軍, 船格, 牙兵을 지칭하기도 했다. 세월이 바뀌어도 목자는 빠지지 않았다.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1년)의 '여섯 가지 고역을 노래함(六苦歌)'을 들어보자.
목자 너는 몹시 고통스럽나니
너를 사람 무리에 넣지도 않는다는구나.
난폭하고 사나움이 본성이 아님에도
이웃 마을에서 싫다고 배척하네.
기록에 옛적 초고의 무리들이
울분이 쌓여 관리에게 저항했다는데
잘 타이르고 얼러서 달랠 수 있었다면
탐냄과 도적질을 어찌 부끄러워하지 않았겠는가?
노루, 사슴과 함께 자고
말, 소와 함께 먹으며
급료가 있다지만 넉넉히 먹을 수 없는데
해마다 1駟(네 마리 말)를 징수하는구나.
목축은 절로 불어나는 것이 아니고
새끼 낳는 일은 억지로 이루기 어려운 것임에도.
牧者爾太苦, 人類不汝置. 頑悍非本性, 隣里所擯棄.
記昔肖古輩, 畜憤抗官吏. 苟能善撫摩, 貪盜寧不愧.
麏麚與同宿, 馬牛與同飼. 有料不得食, 每歲徵一駟.
牧畜自不蕃, 孼産難力致.
주: 초고肖古는 肖古禿不花의 준말로 고려말 몽골 牧胡를 말한다. 1374녀 명나라에 말 2천 필을 공납하기를 거부하여 난을 일으킨 석질리필사石迭里必思, 초고독불화, 관음보觀音保 등 목호를 지칭함.
교래리를 걸으며 예전 그들을 생각했다. 지금이야 어찌 그러하겠는가마는, 내용만 다를 뿐 육고역은 여전한 것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말총과 갓
교래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갓 전시관'이 눈에 들어왔다.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갓은 말총으로 만든다. 익히 들어 아는 이야기다. 그런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갓의 재질은 대나무, 말총(말 꼬리털 또는 갈기), 명주(명주실), 먹墨, 칠漆, 아교 등 다양할뿐더러 '갓일' 또한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 만드는 양태凉臺, 말총을 엮어 원통형으로 만드는 총모자, 양태와 총모자를 아교로 연결하고 먹칠과 옻칠을 번갈아 하며 마감하는 입자笠子 등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갓은 순수 우리말이다. 한자 음역은 갈渴, 의역하면 입笠 또는 입자笠子이다. 갓에는 삿갓, 방갓 등이 있고, 색깔이나 재료에 따라 초립, 흑립, 백립, 죽전립竹戰笠 등으로 나뉜다. 여기서 말하는 갓은 조선시대 양반이나 관리인 남자 전용의 차양이 있는 검은색 모자로 넓은 의미의 관모冠帽에 속한다. 임금의 면류관冕旒冠이나 익선관翼善冠, 관리의 오사모烏紗帽, 서민들이 즐겨 쓰던 패랭이, 무관이나 군졸이 쓰던 전립氈笠과 달리 일반적으로 양반 사대부들이 쓰던 갓은 주로 일상적인 모자이되 격식을 갖추거나 외출할 때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일종의 예모禮帽였다.

갓을 만드는 일, 즉 갓일은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예능을 보유한 이들은 입자장, 양태장, 총모자장 등 세 분야에 3명이 지정되어 있다. 제주 교래리 '갓 전시관'은 제1대 양태장인 고정생 장인의 뒤를 이어 양태장 기능 보유자가 된 장순자 장인이 자신의 땅을 기부하고, 제주도가 건물을 지어 2009년 개관한 전시관 겸 전수관이다. 장순자 장인의 외증조할머니인 강군일 장인부터 시작하여 장순자 장인의 따님인 양금미 이수자까지 4대에 걸친 일가 장인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실천이 이루어 놓은 결과물이다. 작년 2월 말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에서 개최된 제21회 샤르자 문화유산의 날에 초청되어 갔을 때 양금미 이수자를 처음 만나 그녀의 갓일에 대해 듣고 보았다. 그녀에게 물었다. 왜 이리 힘든 일을 하느냐고. 그녀가 답했다. 사명감 같은 것이 있노라고. 우문에 현답이다.
만약 일가 4대가 갓일을 지켜오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힘들게 양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일상처럼 보이지 않았다면, 서울에서 직장 잘 다니고 있던 것을 작파하고 어머니 곁으로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갓이고 뭐고 그냥 박물관에서나 보고 갓은 통영갓이오, 말총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을까? 역대 최저가 1만4000원짜리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갓을 쓰고 '멋있다' 연발하고 있지 않을까? 기능 보유자가 3명이면 그 밑에 이수자로서 조교도 3명이어야 하지 않나? 아직 1명뿐이라니 아쉽다. 기능이란 하루아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오랜 세월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그대도 알고 그이들도 모두 알고 있을 터인데.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별꼴학교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