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청년회가 사람 죽였다고? 정식 입대한 경찰-군인이 죽인 것”
1967년 출범한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은 제주대학교 최초의 법정연구소라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학술지 '탐라문화'는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지 선정,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선정 등 제주에 대한 연구를 세상을 알리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다. [제주의소리]는 탐라문화연구원과 함께 '탐라문화' 논문들을 정기적으로 소개한다. 제주를 바라보는 보다 넓은 창이 되길 기대한다. 연재분은 발표된 논문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Ⅳ. 지역민의 기억: 성산·중문·한림 지역을 중심으로
4.3 당시의 지역민들은 급속하게 변모 해가는 서북청년회의 모습을 온전히 다 파악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진 서북청년회에 대한 기억은 어떠한 것일까.
서북청년회 중 일부는 제주 도내 곳곳에 먼저 도착해 생활해 있었다. 이들은 각각의 지역에서 민간의 사적인 공간에 임시로 흩어져 단체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성산 지역에서는 지역 주민의 집을 빌려 사무실에 거주했다. 한림 지역에서는 초기에 특정한 숙소가 있지 않고 지역 내 여러 민가에 옮겨 다니면서 기거했다. 그러다 한림여관을 서북청년회 숙소 겸 사무실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문 지역에서도 서북청년회 사람들이 원동산이라는 곳의 한 민가에서 단체로 거주했다.
성산 지역의 한 주민은 당시 민간 단체였던 서북청년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억하였다.
"이북 청년들이 성산포에도 와서 한 10여 명이 와서 성산서 해방 후에 서북청년단이라고 해서 사무실 이제 조그맣게 남의 집 조그만 거 빌려서 하고 활동을 어떤 활동을 했느냐면, 경제 활동을 하는데 밭도 없고 그때 공장이 있나 대통령 사진, 독립 운동가로 와서 임시 정부 만들면서 활동하니까 김구 선생 사진, 이청천 장군 초상화, 태극기 액자를 만들어서 그걸 팔러 나오는 데 어떤 집을 가느냐 양철 지붕을 한 집, 일제 때 양철 지붕한 곳은 부자집 초가 집이라도 이문간 앞에 들어가는 어귀에 대문 만들어서 이문간 있는 집 다 부호의 집이거든. 그런 집을 찾아서 사라고 강매를 하는 거야."
이 시기 서북청년회의 특징적인 모습은 아직 경찰이나 군인이 아닌 민간 조직의 신분으로 있으면서 특정한 사적인 공간에서 단체로 생활하고 거주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제주가 자신의 출신이나 기반 지역이 아니었던 탓에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고 엿 장사와 같은 상행위를 하거나 김구와 이승만 등 우파 지도자들의 초상화나 태극기들을 지역 주민들에게 강제로 파는 행위를 하였다.
성산, 중문, 한림 세 지역에서는 특정 시점 이후 사적 조직인 서북청년회 사람들이 군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마을에 주둔하게 된다. 민간 조직이었던 서북청년회가 모습을 달리하여 9연대의 '특별중대'가 되어 각 지역에 배치된 것이다. 이에 따라 서북청년회의 성격은 무기를 소지하고 강력한 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 군대 조직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우선 성산 지역의 경우 서북청년으로 구성된 '특별중대'의 주둔 장소는 성산국민학교였다. 중문 지역도 학교에 서북청년회가 주둔했으며 비슷한 시기 한림 지역서도 마찬가지로 서북청년회가 군 부대로서 한림국민학교에 정식으로 주둔하게 되었다.
"한림국민학교에 있던 군인들은 서북청년단 위주의 특별중대라고 했습니다. 그땐 한 번 끌려가면 고문부터 받았는데, 이를 견디지 못하면 혐의를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군인들은 솔직히 자백하면 살려준다고 유혹했지요. 나도 끌려간 적이 있는데 전기 취조를 심하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난 신체가 좋아서 무사히 버텼습니다."
이 시기 세 지역에서 서북청년회는 '특별중대'가 되어 공통적으로 마을의 학교에 주둔하였고 이때부터 지역 주민에 대한 탄압과 학살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지역의 주민들은 서북청년회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서북청년회에 대한 기억과 인식을 묻는 질문에 중문 지역 주민은 다음과 같이 구술 해주었다.
"제주 4.3사건이 생기니까 정부에서 조병옥 박사가 그 분이 서북청년을 제주도로 보낸 거 아니꽈. 역불로 진압을 좀 하라고. 진압을 하라고 보냈으니까 진압이 좀 무자비하게 행해져서 서북청년에 대한 인식이 제주도민으로서 퍽 안 좋게 생각이 되어십주게. 그러니까 서북청년은 제주도에 그러니까 얼싸 좋다고 해가지고서 정부에서 보내니까 자기네는 당당한 권리를 가졌다고 해서 일반 주민들이 별로 좌익 계통에 들지 안 해도 심어당 조지는 수도 있고. 이렇게 해서 중문뿐이 아니라 제주도 전체적인 현상으로 초래된 거 아니꽈"
서북청년회가 주둔했던 곳에는 '강제결혼'이 이뤄지기도 했다. '강제결혼'의 양상은 복잡하고 다양했다. 현지의 처녀를 탐내어 같이 살고 강제로 결혼하기도 했다.
한림 지역의 경우 군대와 경찰의 주요 지휘관 둘 다 지역 여성과 강제 결혼을 했다. 여성의 가족과 지역 사회 원로나 주민들의 '권유' 혹은 '제안'으로 강제 결혼이 이뤄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은 한림 서북청년회 특별중대 중대장과 당시 국민학교 교사와의 결혼에 관한 구술이다.
"남○○이 중대장하니까, 임시 특별중대니까, 서북청년단 특별중대니까 임시 같이 하는데 그때 결혼식을 시켰지요, 한림학교 강당에서, 아주 거대하게 결혼식을 시켰수다. 형님 때문에...", "교장은 두 딸의 집에 가서 어머니를 불러 놓고 어머니 △△ 선생 하나 중대장이영 같이 살아버리면, 13명을 살릴 건데 어떵허민 조으쿠가 학교의 13명의 교직원에는 △△ 선생의 언니도 포함되어 있다. 남○○ 중대장은 본인이 결혼하면서 자신의 부관을 언니에게 먼저 강제결혼 시켰다."

Ⅴ. 나가며
4.3 시기 서북청년회의 폭력은 국가 혹은 지배 체제에 의해 엄격하고 규율 있게 '독점'되어 철저히 관리되어야 할 것이 그러하지 못하고 '하청'되어 합법적인 폭력과 그렇지 않은 폭력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자의적으로 행사된 것이었다. 이 지점은 서북청년회가 '민병대' 성격을 가진 점을 잘 보여준다.
4.3이 전개가 되어감에 따라 서북청년회는 시기와 장소를 달리하며 다양하게 그들의 모습을 바꾸어 나갔다. 4.3 초기에 마을 민가에 기거하던 사설 청년 단체인 서북청년회가 어느새 학교 운동장에 정식 주둔하는 '특별 중대'로 군인이 되어갔다. 서울에서 내려온 서북청년회 사람들은 '임시 경찰'을 지나 정식 경찰로 임용되었다.
이 연구는 4.3 시기 서북청년회라는 조직과 이들의 지위 변화를 통해 국가 형성 과정에서 폭력의 '독점'이라는 목표 혹은 결과가 도출되는 구체적이며 동적인 과정을 보여주려 하였다. 이 연구가 국가 형성 과정에서 '폭력과 국가'에 관한 논의를 구체화하며 심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래의 주장처럼 자신들의 출신과 변화된 모습을 단절적으로 이해하여 그들의 폭행과 과오를 정당화하는 일이 반박되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데 서북청년회가 군복이나 경찰복을 입고 진압을 나간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개념이 전혀 달라요. 내가 그것 때문에 총리실에 가서도 싸웠는데, 여보쇼 그 사람이 군대에 들어가면 군인이지 서북청년인가? 경찰에 들어가면 경찰이니 서북청년인가? 서북청년이라고 써붙여 놓았냐 이거요. 서북청년이라도 군대 들어가면 군인이고, ...(중략 )그런데 왜 개념을 그렇게 갖는냐 말이야... 절대 4.3사건 때 서북청년회가 사람 죽였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경찰 또는 군인으로 정식 입대한 사람들이에요."
구술 증언자 및 참고문헌
구술 증언자
성산읍 현○○의 증언(1935년생, 구술일자 및 장소: 22년10월1일, 자택).
한림읍 강○○의 증언(제민일보 4.3취재반, 4.3은 말한다④, 전예원, 1997, 318-319쪽).
중문동 고○○의 증언(1928년생, 구술일자 및 장소: 22년11월19일, 자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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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보.
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 제78호(2025)'에 '4⋅3 시기 변모하는 서북청년회의 지위와 지역민의 기억'라는 제목으로 실은 논문을 [제주의소리]에 싣기 위해 정리 요약한 것입니다.
현수성
제주대 사회교육과에서 공부하고, 사회교육대학원에서 자연·문화유산교육을 전공하였다. 다시 사회교육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 했으며, 법교육의 관점에서 과거사를 다룬 '시민법정'에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4.3융합전공을 이수 중이다. 해녀박물관과 4·3평화기념관, 북촌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안내 및 해설을 해오고 있다. 4.3의 역사와 해녀의 문화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논문으로는 제주도 내 마을 간 바당싸움에 관한 연구와 4.3시기 서북청년회에 관한 연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