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 혼자 못 벗어나”…‘청소년 도박’ 고민 나눈 학생·학부모들[르포]
청소년 도박 예방주간 행사
예방·치료 강조한 전문가들 “낫게 해주려 접근해야”
“도박 당해낼 수 없다”…경각심 느낀 학생들
[이데일리 정윤지 이영민 기자] 청소년 도박에 불안을 느끼는 수백 명의 학생과 학부모,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어울림 광장에서 열린 ‘청소년 도박문제 예방 주간’ 행사 중엔 호우 특보가 내려지는 등 폭우가 쏟아졌지만 이들의 관심을 막을 순 없었다. 이 행사에서는 학생들의 도박 고민과 함께 “혼자서는 충동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경고 메시지도 나왔다. 행사 주인공인 학생들은 체험 부스와 토크 콘서트 등에 참여한 후 도박의 위험성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와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예치원) 공동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청소년도박 전문가들과 교사들이 참석해 청소년 도박 중독의 예방과 치료방법에 대해 고민을 나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행사장에 모인 학생들은 저마다 손을 들고 ‘왜 도박을 하면 안되나요’, ‘쉽게 번 돈이면 괜찮지 않나요’. ‘주변에 화투를 하는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가벼운 내기와 게임, 도박에도 중독이 될 수 있느냐는 학생들의 공통된 질문에 박은경 예치원 본부장은 “모두가 도박에 빠져들진 않지만 도박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처음부터 중독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며 “청소년은 정서와 감정이 발달하는 시기라 성인보다 더 빠져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도박에 빠졌다 끊는 데 성공한 전동진(34)씨는 도박 중독을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라고 강조했다. 1년 넘도록 반(反) 도박 상태라는 전씨는 “돈을 딸 때의 쾌감은 단기적인 감정이란 점을 알지만 알면서도 계속하게 됐다”며 “이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느끼는 일시적인 감정일뿐 건강한 감정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도 어떻게 보면 병이라고 볼 수 있다”며 “주변에서도 너무 나쁘게 보지 말고 이 병을 낫게 해줘야겠다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6년간 도박 예방 선도학교인 서울 관악구 미정중에서 예방수업을 했다는 조영석 교사는 “백 번 글로 배우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게 좋다는 것을 이번 행사와 학교 프로그램으로 느꼈다”며 “도박은 특히나 아이들이 역할극이나 가상게임으로라도 중독의 심각성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인생 망할지도, 무서워요”…폭우도 뚫은 ‘청소년 도박 공포’
이날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준비된 28개 체험 부스를 즐기며 도박 예방과 중독에 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한 부스에서 ‘도박중독예방 모의고사’를 푼 미성중 최서연(15), 김수민(15) 양은 도박상담 전화번호를 묻는 문제에 자신 있게 ‘1336’을 골랐다. 10문제 중 9문제를 맞힌 최양은 “학교에서도 교육을 받았고 오늘 행사장에서 이 번호가 눈에 띄어 확실히 알게 됐다”며 “도박은 해본 적 없지만, 이걸 하면 인생이 망한다고 생각하고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경륜이나 확률 게임, 뽑기 등 도박에 흔히 사용되는 게임을 건전하게 즐기는 체험 부스에는 특히 학생들이 몰렸다. 도박 게임을 해본 적 있는 학생도 이날 체험을 통해 한 번 더 경각심을 느꼈다고 했다. ‘바카라’를 한 번 해봤다는 고교 1학년 김모(16)군은 “계속하는 건 무서워서 멈췄는데 여기 와보니 잘못 중독됐다가는 큰 일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는 잘 모르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실수로라도 하지 않도록 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학부모들은 가정에서의 관심과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15살 딸과 함께 온 박성희(45)씨는 “청소년 도박은 어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했다. 조기 교육을 위해 행사를 찾은 현예림(39)씨는 “아이가 아직 어려 도박을 하진 않지만 미리 교육을 시키는 게 좋을 거 같아 관련 자료를 받아가려 한다”며 “요즘은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도박을 한다고 해 걱정된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심오택 사감위원장도 “사감위는 앞으로도 교육부와 경찰청 등과 협력해 청소년 도박 문제를 예방하고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신미경 예치원장도 “사회와 각 기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실효성 있는 예방체계가 마련되고, 도박 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을 빠르게 발견해서 조기 개입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윤지 (yunj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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