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은’ 그 노래, 50년 건너 우리 곁에 [단편선과 플리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한동안 장안의 화제였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유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한 남녀의 삶을 그려내며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얻었다. 음악 마니아인 내게 이 작품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훌륭한 음악 덕분이었다. 추다혜, 곽진언, 홍이삭, 최백호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참여한 OST는 드라마의 결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콕 집어 이야기하고 싶은 음악을 하나만 고르자면 그것은 바로 김정미의 ‘봄’. 매회 〈폭싹 속았수다〉의 오프닝을 수놓은 바로 그 음악이다.
‘봄’은 김정미의 1973년 음반 〈NOW(나우)〉에 수록된 곡이다. 프로듀서는 한국 록의 전설 신중현.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에 이르는 동안 펄시스터즈, 김추자, 박인수, 장현 등과 함께 수많은 명곡을 만들며 당대 최고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의 반열에 올랐다. 〈NOW〉는 그의 여러 작업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음반이다.
〈NOW〉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막 태동하고 있던 한국 인디록 신에 빠져들던 무렵, 〈뉴 어택(New Attack) 2002〉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이 발매됐다. 델리 스파이스, 불독맨션 등 당대 인디 신을 대표하는 밴드가 모여 한국의 옛 가요들을 리메이크한 음반에서, 내가 처음 들은 ‘봄’은 밴드 뷰렛이 부른 버전이었다. 그 자체로도 좋은 곡이었지만 나는 이내 원곡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처음 듣게 된 김정미의 ‘봄’ 그리고 〈NOW〉는 완전히 충격적이었다.
〈NOW〉의 초반을 장식하는 세 곡 ‘햇님’ ‘바람’ ‘봄’은 이 앨범을 단숨에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가장 먼저 귀를 사로잡는 것은 단연 김정미의 보컬이다. 당시 그녀는 ‘제2의 김추자’로 불리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보컬은 완전히 다른 결을 지닌다. 김추자의 목소리가 야성적이고 섹슈얼한 에너지를 직선적으로 뿜어낸다면, 김정미는 훨씬 나른하고 몽환적인 음색을 지닌다. 민요와 국악에서 비롯된 시김새가 비음 섞인 오묘한 발성과 맞물리며,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무드로 이어진다.
중후반부에 배치된 ‘불어라 봄바람’과 명곡 ‘아름다운 강산’까지 〈NOW〉에서 신중현과 김정미는 유독 이 땅의 강산과 계절, 풍경을 노래한다. 사운드의 뼈대는 심플한 록이지만, 이를 감싸는 것은 부드럽고 몽롱한 오케스트레이션이다. 특히 7분에 가까운 ‘햇님’의 후반부 오케스트레이션은, 미국 록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선데이 모닝(Sunday Morning)’에서 들을 수 있는 환각적인 감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 아름다운 연주와 함께 신중현과 김정미는 계속 어딘가로 향하고, 누군가를 부른다. “햇님을 만나러/ 나와 함께 맞으러 가자/ 영원한 이곳에/ 그대와 손잡고/ 햇님을 보면서/ 다정히 살리라(‘햇님’)” “꽃밭을 헤치며 양떼가 뛰노네/ 나도 달려보네/ 저 산을 넘어서/ 흰구름 떠가네/ 파란 바닷가에/ 높이 떠올라서/ 멀어져 돌아온다네(‘봄’)”
‘이 노래들은 어떤 마음으로 쓰였을까?’ 오래된 음악을 들을 때면 으레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NOW〉는 발매되자마자 박정희 정권에게 판매 금지 조치를 당했고, 초기의 프레스는 대부분은 강제 소각당했다. 곧이어 1975년 대마초 파동이 터지며 신중현을 포함한 많은 음악가들이 투옥되거나 활동을 중단했다(정작 당시 신중현은 대마초를 피우고 있지 않았음에도). 미 8군 무대에서 태동한 한국 록의 역사는 이렇게 국가 폭력에 의해 단절되었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마치 유니콘인 양 음반 애호가들의 입소문만으로 전해지다 2000년대 초 복각되어 다시금 리스너들과 만났다. 지금의 사람들이 ‘봄’을 만나는 데까지는 이런 굴곡진 역사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처음 발표되고 5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이 음반의 아름다움은 조금도 빛을 잃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가 〈NOW〉를 듣는 이유다.
단편선 (음악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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