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 짙어가는 계절…초록길 걸으며 차향에 취하다

황지원 기자 2025. 5.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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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제철행복] (2) 전남 보성 녹차밭 체험
숲길 지나 펼쳐지는 녹색 차밭
눈앞 트여 시야도 마음도 시원
찻잎 따고 덖는 차 만들기 체험
‘1창 2기’ 새순과 여린 잎을 따
우전차 한잔에 봄기운 한가득
초록빛으로 물든 대한다원.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처럼 예사로운 일을 말한다. 차는 언제 어디서든 마실 수 있지만 초록색 차밭을 거니는 건 바로 지금, 볕바른 남녘에서만 할 수 있는 일. 그래서 떠났다. 전남 하고도 보성으로.

뾰족하게 올라온 새순과 양 옆에 난 여린 잎 2장을 뜻하는 ‘1창 2기’ 방식으로 딴 찻잎.

보성은 국내 최대 차 산지다. 보성군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농지 778㏊에서 생엽 4975t이 생산됐다. 보성은 연평균 기온이 13℃ 안팎으로 온화하고 연평균 강우량은 1400㎜로 넉넉하다. 바다와 가까워 안개가 잘 끼는데, 이 안개가 찻잎에 수분을 공급하면서 직사광선은 차단한다.

보성에 대규모 차밭이 생겨난 건 일제강점기부터다. 국내에서 차나무가 자라기 적합한 곳을 찾던 일본인 차 전문가들은 보성을 택했고, 1940년 29.7㏊ 규모 밭에 차 씨앗을 뿌렸다. 이 차밭은 한국전쟁을 겪으며 폐허가 되고 만다. 장영섭 대한다원 회장은 1957년 이곳을 인수해 해발 350m 봉우리에 약 165㏊ 차밭을 계단식으로 조성했다.

조현곤 다도락 대표의 안내에 따라 찻잎을 따는 기자.

성인 4000원, 65세 이상과 청소년은 3000원 하는 입장료를 내고 입구에 들어서면 고개를 한껏 들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키 큰 삼나무로 이뤄진 숲길이 관광객을 반긴다. 찻잎은 구경도 못했는데 벌써 치유가 되는 기분이다. 삼나무 숲길을 빠져나오면 마침내 차밭이 펼쳐진다. 눈앞에 보이는 건 온통 초록색뿐. 이곳에선 시야도, 마음도 탁 트인다.

이제 차밭으로 올라갈 차례. 등산과 다르지 않기에 운동화는 필수다. 대한다원이 제시하는 관람 코스는 난도와 소요 시간에 따라 20분짜리부터 1시간짜리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차밭에서 사진을 찍고 차 내음을 맡다보면 이 시간이 무의미해진다. 차밭 한가운데 있는 중앙전망대로 빨리 가고 싶다면 차밭을 가로지르는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계단이 엄두가 안 나면 차밭을 빙 둘러서 올라가는 길을 택해도 좋다.

정상인 바다전망대까지 올라가기로 한다. 길이 가파른 데다 바닥이 고르지 못해 노약자에게는 버겁겠다. 나무가 우거진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자 어느새 땀이 나기 시작한다. ‘대체 언제 도착하나’를 속으로 다섯번쯤 투덜댔을 무렵, 정말로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차밭, 산등성이, 그리고 빼꼼히 이마를 드러낸 남해. 층층이 펼쳐진 풍경과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포기하지 않고 올라왔다고 주어지는 선물 같다.

이번에는 차를 직접 만들어볼 시간. 보성의 여러 다원에선 차 만들기 체험을 진행한다. 다원 목록은 한국차박물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로 20명 이상 단체 예약만 받아 기자 역시 거절당하기 수차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연락한 ‘다도락’ 다원의 조현곤 대표는 기자의 간절한 부탁에 못 이기는 척 시간을 내주기로 했다.

체험은 찻잎을 따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 대표는 찻잎을 딸 땐 ‘1창 2기’만 기억하면 된다고 외쳤다. 뾰족한 창처럼 생긴 새순 하나와 그 양옆에 깃발처럼 생긴 여린 잎을 함께 따는 것을 말한다. “딴 잎을 그대로 씹어보세요.” 잎 10장을 먹으면 한살은 젊어진단다.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올라오더니 마지막에는 쌉싸래함이 입안에 감돈다. 잎을 비빔밥에 넣어 먹어도 좋다. 보통 곡우(올해는 4월20일) 전에 딴 찻잎으로 만든 차를 ‘우전’, 곡우와 입하(〃5월5일) 사이에 딴 차를 ‘세작’, 입하부터 5월 중순까지 딴 차를 ‘중작’이라고 부른다. 여린 잎으로 만든 차일수록 품질이 좋다.

찻잎을 커다란 솥에서 2시간 동안 덖어야 비로소 마실 수 있는 차가 된다.
곡우 전에 딴 여린 잎으로 우린 우전. 보성=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딴 잎은 씻지 않고 바로 큰 솥에서 덖는다. 허리를 숙인 채 찻잎이 타지 않도록 2시간 동안 계속 뒤집어줘야 한다. 5분도 되지 않아 허리가 아파온다. 조 대표에게 “이걸 어떻게 2시간씩 하고 있냐”고 묻자 요즘엔 다 기계로 한단다. 조 대표가 미리 덖어놓은 우전차를 대접받았다. 맑은 연녹색을 띤 차는 은은한 풀 내음과 함께 입안 가득 부드러운 감칠맛을 퍼뜨렸다. 봄기운이 온몸으로 스미는 듯하다. 5월엔 눈으로 한번, 입으로 또 한번 초록을 가득 담는 시간을 누려보자. 찻잎이 숨 쉬는 보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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