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총칼에 맞선 광주시민…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 [오늘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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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18일 광주광역시(당시는 직할시) 거리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5월18일 광주에서도 격렬한 항거가 시작됐다.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은 거의 전멸했고 광주는 다시 철저한 통제 아래 들어갔다.
그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그 참상을 세계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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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8일 광주에서도 격렬한 항거가 시작됐다. 전남대학교 앞에서 시작된 시위는 곧 시민들의 참여로 번졌고 신군부는 11공수여단 병력을 투입해 이를 진압했다. 공수부대원은 운동권 학생뿐만 아니라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무고한 시민까지 살상하고 폭행했다. 곤봉과 총검으로 무장한 병력에 맞선 시민들은 점차 조직적인 저항에 나섰고 시위는 도시 전역으로 확산했다.
며칠간의 충돌 끝에 5월21일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도청 앞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맞춰 집단 발포를 감행했다. 이날은 5·18 민주화운동의 분수령이 됐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시민들은 생존을 위한 저항자로 나서게 됐다. 결국 시민들은 무기고에서 무기를 확보해 무장했고 계엄군은 같은 날 시내에서 철수하며 도시는 일시적으로 시민군의 통제 속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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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진실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조금씩 드러났다. 1988년 국회 청문회를 시작으로 1995년에는 '5·18 특별법'이 제정됐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내란죄 및 반란죄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이들에게 무기징역과 수천억원대 추징금을 선고하며 역사적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4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5·18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이들 중 상당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다. 오수성 전남대 교수 연구진은 5·18 유공자 중 부상자와 구속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신체적, 정신적 상해를 입은 성폭행 피해자나 난민, 고문 피해자 등 인권 유린 피해자와 유사한 경험을 해 상당수가 PTSD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지원 기자 jiwon.k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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