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떠올린’ 광주 밖 사람들

이성각 2025. 5. 1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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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주] [앵커]

12·3 비상계엄 때 80년 5월을 떠올렸던 것은 광주 사람들만은 아니었습니다.

12·3 비상계엄 위기 속에서 '80년 5월'의 역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는 연속기획.

오늘은 KBS 유튜브 '12·3 비상계엄 증언 채록 프로젝트'에 담긴 광주 밖 사람들의 5·18 이야기를 이성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3일 밤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증언을 담은 KBS 유튜브 채널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비상계엄의 공포 속에서도 국회에 모인 사람들은 광주와 5·18를 떠올렸습니다.

[김선영/금속노조자동차판매연대지회장 : "옛날에 5·18 광주에서 들었던 정말 계엄군 공수부대가 투입되는구나. 그때부터는 좀 '야 진짜 계엄이구나' 공포감이 좀 오긴 하더라고요."]

계엄 당일 국회 경내에 진입했던 최진영씨도 계엄군과 맞서며 80년 광주와 같은 비극을 막아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최진영/직장인 : "광주처럼 시민을 죽일 수 없어요. 정신 차려. 이 명령은 거절해야 해요. 명령 거부하세요."]

야간 근무 직전 비상계엄 소식을 들은 충남 당진의 홍원기씨, 5·18의 공포 속에서도 주저없이 국회로 향했습니다.

[홍원기/노동자 : "80년대를 경험했던 그리고 광주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않았을까."]

'80년 광주'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광주 출신 젊은 세대들의 감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황인경/가수 : "삼촌 같은 경우에도 당시 계엄군에게 구타를 당해서 허리 부상을 입었던..."]

그러면서 5·18 당시 완전히 고립됐던 광주의 상황을 가늠해봅니다.

[황인경/가수 : "5·18 때 광주에서는 어떻게 서로 소식을 주고 받고 했을까? 그때 그 막막한 두려움을 이겨낸 용기가 참 대단하구나."]

고교 시절, 5·18 역사탐방의 경험이 국회로 이끌었다는 대학생.

[송영경/성공회대 대학생 : "그때 배웠던 광주와 역사를 안고 저도 국회로 향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 5.18에 대한 부채의식을 안고 산 아버지를 떠올렸다는 인권운동 활동가까지.

[이대선/국제앰네스티 활동가 : "이때 내가 나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고 평생 부채감이나 미안한 마음으로 살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광주 밖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날 밤, 5·18과 광주를 기억하며 민주주의를 향한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이성각 기자 (dri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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