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호남의 심장’ 광주 방문···이재명·김문수의 5·18 전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같은 날 나란히 호남의 ‘심장’ 광주를 찾았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으로 조명받은 오월 광주 정신, 민주주의에 대한 상징성과 함께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맞물려 호남 민심 잡기라는 정치적 목적까지 더해졌다. 두 후보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서로를 향한 메시지에는 날카로운 날을 세웠다.
5·18 민주화운동 제45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5월17일, 김문수 후보가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를 시작으로 광주 일정을 먼저 시작했다. 민주묘지를 찾은 김 후보는 방명록에 ‘오월 광주 피로 쓴 민주주의’라고 적고 헌화를 했다. 이어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한 윤상원 열사와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 묘를 각각 참배했다.
김문수 후보는 박관현 열사 묘에 한참 머무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박 열사는 1982년 수감생활 중 50일간 단식투쟁을 하다 숨졌고, 김 후보는 5년 뒤인 1988년 노동·민주화 운동 중 박 열사가 숨진 독방에 수감됐다. 김 후보는 박 열사 묘 앞에 서서 “광주교도소에서 박관현 열사가 죽은 뒤 제가 들어가서 그 방에서 1년 생활했다. 5월을 생각하면 늘 너무 아픈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참배에는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과 김기현·안철수·양향자·이정현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박대출 사무총장, 인요한 호남특별위원장 등이 함께했다.
광주전남촛불행동 소속 시민들은 5·18 민주묘지 앞에서 김문수 후보의 광주 방문 반대 시위를 열었다. 이들은 “내란공범은 지금 당장 광주를 떠나라“, ”국민의 명령이다. 내란세력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현장을 벗어난 김문수 후보는 민주묘지 참배 직후 방문한 옛 광주교도소 터에서 자신의 방문을 반대한 시민들을 비판했다. 김 후보는 이 자리에서 “여러가지 아픔을 딛고 대한민국이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이뤘다. 오월의 정신은 남을 미워하거나 공격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걸 정치적으로 악용하거나 또는 아까 저보고 고함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5월의 아픔을 알겠느냐. 자유와 민주주의는 피 흘리고 고통받는 많은 희생 위에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문수, 윤석열 탈당에 “존중한다”
김문수 후보는 이어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 광주·전북·전남 현장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저는 5·18, 80년 5월의 희생자 중 하나다. 저는 그걸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밑거름이 되는 저의 아픔이었고 시대의 아픔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해선 “지금 우리 앞에 보여진 독재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독재다. 이번 선거는 단순하게 정당 간의 대결이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하느냐 아니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해괴망측한 독재로 전락하느냐의 대결이다”라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의 광주 방문은 이날 오전 윤석열의 기습 탈당으로도 주목 받았다. 윤석열의 탈당 요구는 지난해 국회의 탄핵안 가결 직후부터 이어져 왔고, 5월12일 공식 선거 운동에 돌입한 이후부터는 출당·탈당 여부를 놓고 당 내부 이견이 분출되어왔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만 일관하면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당초 광주 방문 중 중앙선대위 현장회의 일정 이후 기자들과 김문수 후보의 질의응답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김 후보 측은 회의 종료 직후 돌연 일정 지연을 이유로 연기한다고 공지했다. 기자들이 항의하자 김 후보가 질의응답 대신 윤석열 탈당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로 했는데, 김 후보는 “그 뜻을 존중한다. 재판도 잘 받고 건강도 잘 유의하기를 바란다”며 윤석열을 예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문수 후보의 광주 방문은 이날 오전 마무리됐다. 앞서 김 후보 측은 호남 유세를 기획하면서 5월18일 열리는 5·18 공식 기념식과 전날 열리는 전야제 모두 참석하려 했지만 계획을 수정했다. 5월18일 밤 개최되는 대선후보 토론회 준비를 이유로 밝혔지만, 다른 배경도 있다. 앞서 제45주년 5·18 민중항쟁행사위원회(행사위)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5·18 전야제 참석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김 후보 측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행사위는 김 후보가 참석할 경우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 사실상 반대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최근 김 후보 캠프의 ‘정호용씨 상임고문 위촉 번복' 논란이 배경으로 보인다. 앞서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진압 작전을 지휘했던 정씨를 5월14일 선대위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가 ’부적절 인선’ 논란이 일자 한밤에 취소했다. 정씨는 전두환 정권 시절 내무부 장관·국방부 장관 등을 지냈다.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을 주도한 혐의로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다.
‘당의 심장부’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3박4일간 호남 유세 일정의 마지막 행선지를 광주로 정했다. 이 후보는 5월15일 경남 하동 화개장터에서 간담회를 시작으로 16일 전북 익산과 군산과 전주, 정읍 등을 방문하면서 당의 텃밭인 호남에 상주하며 이른바 ‘표밭갈이’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 후보는 5월17일 오후 광주에 방문했고 다음날까지 머물렀다가 5·18 기념식에 참석한다.
이재명 후보의 광주 방문 첫 일정도 5·18 민주묘지 참배였다. 방명록에는 “5월 광주 정신으로 빛의 혁명을 완수하겠다”고 적었다. 이 후보는 이어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광장에서 집중 유세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이 후보는 “광주 학살의 참상은 판·검사가 돼 잘 먹고 잘살며 떵떵거리자고 마음먹은 저 같은 사람이 생각을 고쳐먹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해 다시 탄생하게 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위대함이다. 그게 이재명을 사회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어머니, 사회적 어머니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중 유세 과정에서는 국민의힘 출신으로 개혁신당 정책위의장을 맡았던 김용남 전 의원이 깜짝 등장해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김 전 의원은 이날 오전 개혁신당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광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후보는 유세 중 “어제(16일) 김상욱 무소속 의원이 민주당과 같이하기로 했는데 오늘은 김용남 전 의원이 함께 해주시겠다고 해서 이 자리에 모셨다”며 김 전 의원을 연단으로 불렀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김 전 의원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명백히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이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룰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는 광주 e스포츠 경기장으로 옮겨 게임 산업 관련 간담회를 진행했다. 행사 이후 이뤄진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윤석열 탈당과 김문수 후보, 국민의힘에 대해 비판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 일각에서) ‘나가주십시오’하고 부탁하니 ‘잠깐 나가 있겠다’한 것인데, 그럴거면 뭐하러 탈당하나. 정치적 전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며 “탈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이 제명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국민의힘은 곧 국민께 큰절하며 ‘정신차리겠다‘, ‘잘하겠다’고 할 것이다. 국민을 배신하고, 국민 주권에 어긋나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는 꼭 국민에게 큰절하면서 ’다신 안 그러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잘못을) 계속 해왔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군사 쿠데타에 대해 명확하게 석고대죄하지 않고 적당히 미봉책으로 넘어가려는 것은 정말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김 후보가 5·18 광주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을 두고는 "광주 5·18 정신은 지역 정신이 아니라 국민주권 정신이라고 생각해주고 헌법 전문에 꼭 수록해달라”고 촉구했다.
5·18 전야제를 마지막으로 17일 일정을 마친 이재명 후보는 다음날 5·18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오전 10시에 엄수되는 기념식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192명과 함께 참석해 참배할 계획이다.
광주·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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