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젖은 땅 위 경건한 발걸음… 오월 ‘산 자들’이 건넨 꽃
묘비 앞 고요한 헌화 45년의 기억
"동생 뜻 잇겠다"…유족들의 다짐
전국·해외서도 발걸음 이어져

"비가 왔다고 안 오면 안 되잖습니까. 매년 오는 날인데요."
17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1묘지. 하루 전 내린 비는 생각보다 깊었다.
묘지 내의 길목들은 군데군데 질퍽했다. 어젯 밤 내린 비가 생각보다 깊은 탓이다. 아직 물기를 머금은 잔디는 밟으면 밟는 대로, 제 몸을 다 내어주고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이들의 목적지는 묘역 안 쪽, 이름 석 자 새겨진 비석들 앞이었다. 묘비 앞은 조용했다. 발걸음은 잦아들고, 숨소리는 묻혔다. 고요 속 꽃 한 송이씩 내려놓는 손끝만이 움직였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묘비를 어루만졌다. 또 다른 이는 두 손을 모아 무언가를 읊조리며 기도했다. 헌화는 짧고 간결했으나, 그 속에 담긴 시간은 45년이었다.

5·18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고(故) 박관현 열사의 누님 박행순(70대) 씨도 묘지를 찾았다. 박 씨는 박 열사가 하늘로 떠난 지 43주년이 되는 이날까지도 매년 묘지를 찾고 있다.
박 씨는 "관현이가 원했던 삶의 100분의 1이라도 역할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하늘에 있는 관현이가 안심할 수 있는, 동생이 목숨을 바쳐서까지 원했던 나라를 위해 남은 산 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겠다"고 했다.
5·18 당시 '최초의 수배자, 최후의 수감자'로 본인을 소개한 최운용(70대) 씨도 묘지 한 편에서 참배하고 있었다. 2017년 별세 후 안장된 부인 박남순 씨를 보기 위해서다. 박 씨는 당시 계엄군이 뿌리는 최루가스에 맞서 마스크를 제작해 시민들에게 건넸다고 한다.

광주 뿐 아니라 전국에서 발걸음이 이어졌다. 울산 시민 이태수(70) 씨도 민주묘지를 찾게 됐다. 최근 '5·18 광주 정신' 덕에 국가 혼란을 수습할 수 있었다 생각했고, 이에 대한 감사함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 씨는 "5·18 희생자 분들께 대한 감사함, 그들 덕분에 혼란한 시국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자부심 등을 느껴 참배하게 됐다"고 했다.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 보훈해설사들의 인솔을 받는 단체 관람객도 곳곳에서 보였다. 각각 10~20명 씩 함께 찾아온 시민들은 열사들의 묘지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에 집중했다. 해외 단체 참배객들도 있었다. 일본에서 찾아온 히나코(70대·가명) 씨는 해설사의 설명을 공책에 받아적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는 "슬프다"고 짧게 대답했다.
/임지섭 기자 lj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