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음향의 마법사 [休·味·樂(휴·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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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은 그 유산과 영향력을 곱씹어 후대에 일깨우는 의미를 지닌다. 올해 음악계에선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향 역시 5월15일과 16일, 라벨의 <고귀하고 감상적인 왈츠>를 연주하며 그의 탄생을 기렸다. 음악사를 통틀어 오케스트레이션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곡가를 손꼽는다면 라벨이 최상위권을 차지할 것이다. 음악도들에게 라벨의 작품은 그 자체로 관현악법에 관한 귀중한 교본이다. 그의 관현악곡은 개별 악기의 음색과 역량을 완벽히 이해하고, 상상력 넘치는 악기 조합으로 각 악기군의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관현악 전체 음색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이란 악기들의 음색과 기능을 고려하면서 조화롭게 결합하는 창조적 과정이다. 한국어로는 ‘관현악법’이라 일컫는 이 과정에는 풍성하고 다채로운 사운드 성취를 위한 전형적 공식이 존재한다. 플루트는 투명하고 트럼펫은 호쾌하며 하프는 신비롭다.
완벽주의자였던 라벨은 작품 수가 많지 않다. 그중 상당수는 피아노곡을 오케스트라로 다시 풀어낸 작품들이다. 이번에 서울시향이 연주한 ‘고귀하고 감상적인 왈츠’도 피아노의 중성적 사운드를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음색 팔레트로 재해석한 것이다. 덕분에 청중은 같은 곡을 새로운 관점으로 감상하는 경험을 확장하게 됐다. 몇몇 곡들은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후에 더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라벨은 음표만 옮기는 편곡을 하지 않았다. 그의 편곡은 처음부터 오케스트라를 위해 고안된 작품인 듯 피아니스틱한 흔적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의 화성에 서로 다른 물성을 지닌 악기를 섬세히 쌓아 올려 산뜻한 울림을 자아내고, 하나의 선율을 여러 악기가 번갈아 이어받아 횡적인 다양성을 획득한다. 피아노 작품을 관현악으로 풀어낼 경우, 다이내믹의 폭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 ff(매우 크게)로 몸집을 불린 음량은 더 격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pp(매우 조용함)로 낮춘 소리는 고요한 내면을 성찰한다.
게다가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는 즉시 소리가 사라지지만, 오케스트라는 관악의 호흡과 현악의 보잉으로 음표의 생명을 훨씬 더 길게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피아노의 음향적 한계를 극복한 덕택에 관현악 사운드의 풍경은 광활하게 확장된다. 라벨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여러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태피스트리처럼 현대의 청중에게 청각적 상상력을 북돋고 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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