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완성하는 빛의 조각, 안소니 맥콜

문소영 2025. 5. 1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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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 맥콜의 빛 조각작품 ‘솔리드 라이트’ 연작이 북촌 예술공간 푸투라 서울에 설치된 모습. [사진 푸투라 서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장에서 스크린만 바라본다. 하지만 영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빛이 스크린에 닿기 전 암흑을 가로지르며 직선과 면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고 그 빛을 일종의 조각작품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조각, 관람자가 그 안팎을 통과하고 넘나들며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조각 말이다. 이달 초 푸투라 서울에서 아시아 최초 개인전을 시작한 선구적인 예술가 안소니 맥콜(79) 이야기다.

지난해 서울 북촌에 개관한 예술공간 푸투라 서울의 전시공간 중에는 높이가 10.8m에 이르는 공간이 있다. 지금 이 공간은 온통 컴컴한 가운데 천장에서 바닥까지 닿은 세 개의 거대한 빛 원뿔이 보인다. 이들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바닥에 빛의 선으로 된 드로잉을 그린다.

작가 안소니 맥콜. [사진 푸투라 서울]
원뿔 중 한 개는 빗소리를 동반하고 가끔 천둥소리와 함께 내부에서 번개 같은 빛이 번뜩이며 원뿔 안에 있는 관람객을 비춘다. 그 내부로 들어가면 빛으로 된 선과 면에 옅은 구름이 흐르는 듯한 신비로운 광경을 보게 된다. 구름의 정체는 빛에 뚜렷한 조각적 형태를 주기 위한 인공 안개다. 이 작품 ‘스카이라이트’는 맥콜의 대표 연작 ‘솔리드 라이트(Solid Light 고체 빛)’ 중 신작으로서, 실제로 설치된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나머지 두 개의 원뿔은 하나의 작품 ‘당신과 나 사이’(2006)로서 시간에 따라 서서히 서로 겹쳐지고 변화한다.

전시장에서 중앙SUNDAY와 만난 맥콜은 “영화에 대한 관심에서 ‘솔리드 라이트’가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에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불을 위한 풍경’(1972) 같은 대규모 퍼포먼스를 하면서 그것을 영화로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영할 때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내게 진짜 중요한 것은 (실시간으로 펼치는) 퍼포먼스였기 때문이죠. 그러다 아방가르드 영화에 흥미를 갖게 됐고, ‘영화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일련의 생각을 거쳐 (영사기에서 나오는) 광선을 가지고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럼으로써 나는 문자 그대로 스크린을 등지게 된 것이죠.”

영국 출신의 맥콜은 1973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후 어두운 다락방에서 필름 영사기로 연기 속에 빛을 쏘아 조각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했다. 그렇게 해서 ‘솔리드 라이트’ 연작의 시초인 ‘원뿔을 묘사하는 선’이 탄생했다. 그의 작업은 1960년대 시작된 아방가르드 영화 운동으로서 영화를 퍼포먼스, 조각, 드로잉 등 다른 매체 예술과 결합하는 ‘확장 시네마(Expanded Cinema)’의 중요한 한 갈래로 여겨진다.

맥콜의 초기작 ‘불을 위한 풍경’(1973). [사진 푸투라 서울]
그러나 맥콜의 초기 작업은 여러 제약에 부딪혔다. “처음에는 먼지가 자욱하고 모두가 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뿜어대는 장소에서 작품을 선보이니 빛의 조각적인 형태가 잘 구현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미술관 전시장에서는 공기가 지나치게 깨끗해 제대로 구현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미술관이나 시장에서 이런 작업을 예술로 받아들이지도 않는 분위기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래서 그는 70년대 후반부터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20여년간 작업을 중단했다.

90년대 후반, 디지털 프로젝터와 인공 안개 기계가 나오면서 맥콜은 작업을 재개하게 되었다. 수많은 노트에 빼곡히 적어놓았던 아이디어들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2001년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 그룹전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주목 받게 되었다. 현재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도 대규모 개인전을 진행 중이다.

맥콜은 “나는 빛으로 작업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매체”라고 설명했다. “작품을 구성할 때 시간이 한 작품과 다른 작품을 차별화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작품이 매우 느리게 움직이게 한다. “이건 내 작업의 조각적인 특징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려면 몸을 움직일 필요 없이 한자리에서 눈과 머리로만 경험하면 돼요. 하지만 조각적인 작품은 (작품 둘레를 도는 등) 몸을 움직여야 이해하고 볼 수 있어요. 관람자도 ‘작업’을 해야 하는 거예요. 나는 그들이 그 작업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자기 자신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 합니다. 예술가가 하는 일은 배관공 같은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불을 위한 풍경’ 등 여러 초기작들도 선보인다. 푸투라 서울의 구다회 대표는 “처음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 위주로 전시를 생각했었는데 작가에 대해 알게 될수록 그의 전체 작업세계와 아이디어들에 매료되어 그의 초기작부터 소개하는 쪽으로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푸투라 서울의 전시는 9월 7일까지 계속된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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