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사색의 법정에서
이직을 앞두고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친구를 만났더니 “시간이 많아지니 옛날 생각만 자꾸 하게 된다” 하더군요. 20~30년 전 일을 곱씹고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하며 ‘이불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래. 우리 모두 중년을 앓고 있나 봐”라며 웃었습니다.
윤혜준 연세대 영문과 교수가 쓴 ‘인생길 중간에 거니는 시의 숲’(교유서가)을 펼쳤더니 마침 맨 앞에 셰익스피어의 이런 시가 나옵니다. “달콤하고 고요한 사색의 법정으로/ 내가 지난 일의 추억을 소환할 때,/ 내가 찾았으나 잃은 많은 것 때문에 한숨짓고,/ 옛 아픔으로 새로 한탄하네, 내 소중한 시간의 폐허를.” 윤혜준 교수는 설명합니다. “이 법정의 재판관, 그리고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모두 자기 자신이다. ‘지난 일의 추억’은 ‘내’가 소환했다. 좀 더 의젓하고 담담하고 성숙한 중년의 외양에 맞는 ‘나’. 그렇다면 피고는? ‘지난 일의 추억’, 다시 말하면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이다.”
시의 화자는 세상을 떠난 벗들, 옛사랑의 아픔까지 떠올리며 슬피 울다가 “또 무겁게 아픔을 하나씩 하나씩 헤아리며/ 이미 애통했던 애통을 새롭게 장부에 정리하며,/ 마치 이미 완납하지 않은 듯 새로 토해”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의 고리를 끊어주는 이가 있으니, 가족도, 연인도 아닌 바로 친구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시를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너를 생각하면, 다정한 벗아,/ 모든 손실 회복되고, 또 슬픔도 끝나는구나.”
잡념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죠. 인생의 비슷한 단계를 지나고 있는 벗이라면 더더욱 위로가 될 겁니다. ‘사색의 법정’에 서 있는 친구에게 이 시를 들려주며, ‘과거의 나’에게 좀 더 너그러워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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