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의 강' 건너는 의뢰인…변호사는 길 비추는 뱃사공
[정재민의 ‘죄와 벌’] 변호사와 의뢰인
![아내 살해 혐의를 받는 용의자 남편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을 펼치는 영화 ‘의뢰인’의 한 장면. [사진 각 영화사]](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8/joongangsunday/20250818155038261rjqp.jpg)
나는 수용자가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고 수용자가 먼저 들어가기를 기다린 다음 내가 들어간다. 그 전에 악수를 하지 못했다면 들어가기 전에 악수를 하고 들여보낸다. 서로 마주 앉은 다음에는 나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목례를 하고 잠시 상대의 눈을 마주하면서 “안녕하세요? 건강은 괜찮으세요?”라고 말한 뒤 상대가 말하기를 기다린다.
나는 상대가 누구든 첫 만남의 순간을 아주 중시한다. 나와 관계를 맺는 개개 사람과의 관계마다 나름의 세계가 있고, 그 각 세계 안에는 제각각의 역사와 흥망성쇠가 있고, 우주의 항성처럼 탄생과 폭발과 소멸의 과정이 있다. 타인과의 관계는 첫 만남을 통해서 탄생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처음 만난다는 것은 관계라는 우주를 탄생시키는 빅뱅 같은 것이다.
첫 만남, 관계라는 우주 창조하는 빅뱅
만남의 핵심은 시선을 맞추고 목소리를 섞고 감정을 주고받는 데 있다. 나는 사람의 영혼은 눈빛과 목소리와 체온을 통해서 육체 밖으로 비집고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니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서로 눈빛과 목소리의 진동과 체온과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것도 결국 상대의 눈빛과 목소리와 체온과 감정의 패턴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판사 시절 피고인이 비로소 나의 피고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사건을 배당받았을 때가 아니라 첫 기일에 피고인을 만나서 인정신문(이름·생년월일·직업·주소 등을 묻는 절차)을 할 때이다. 사실 하루에 서른 번씩 이런 단조로운 인정신문을 반복하다 보면 목이 타서 녹음해서 립싱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늘 긴장되고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으로 판사와 피고인이 서로 마주 보고, 시선을 맞추고,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모습이 상대의 망막에 비추어지고 서로의 목소리의 진동이 서로의 몸에 전달되면서 처음 우리 두 사람이 ‘만남’을 가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때 비로소 판사가 판사가 되고 피고인이 피고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에서도 판사와 피고인이 만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하다. 사실 사람을 안 보고 기록만 보면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판결문을 쓰기가 더 쉽다. 하지만 그런 일이라면 인간이 인공지능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의 재판을 재판이라 부르기 어려운 것은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변호사가 수용자를 처음 만나서 말을 나누는 순간도 중요하다. 처음 상대와 눈빛을 맞추고 악수를 나누고 목소리의 진동에 집중하고 상대가 하는 말을 경청하려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수용자를 접견했을 때 그가 “변호사님은 자기 말만 쭉 늘어놓지 않고 제 말씀을 들으려고 하시네요?” 하면서 다른 건 더 볼 것도 없다면서 사건을 맡기고 싶다고 한 적도 있었다.
첫 접견을 통해서 수용자는 변호사를 선임할지 말지를 판단한다. 수용자도 나를 살피는 것이 느껴진다. 내 나이가 젊은지, 내 눈빛이 또렷한지, 내 언변이 좋은지, 내 학벌과 경력이 어떤지, 어떤 판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구금된 기간 동안 감방 동료들로부터 들은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던지는 법적 질문에 대해서 내가 정확하고 믿을만한 답을 하는지 등을 가늠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느낄 수 있다. 마치 기수가 경주마들을 살피는 눈길처럼 보일 때도 있고, 맞선 자리에 나온 상대방의 눈길 같기도 하다.
의뢰인과 변호사의 첫 만남은 맞선 같은 성격이 있다. 첫째, 둘 다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아주 중요한 인연을 찾는 일이다. 둘째, 결혼 생활도 재판도 함께 길을 가보기 전에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셋째, 일단 함께 길을 떠나고 난 뒤에는 원상태로 무르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기에 쉬운 일은 아니다. 의뢰인 입장에서는 어쩌면 맞선을 통해 배우자를 고르는 것보다 변호사를 고르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좋은 배우자감은 한 번 보고 확신이 안 들면 거듭 만나보면 되지만 변호사는 거듭 만나보기 어려우니까.

반면 변호사와 의뢰인은 서로를 선택할 수 있다. 판사는 재판 과정 내내 양쪽 당사자 중 누구도 편들면 안 되지만 변호사는 수사나 재판 내내 의뢰인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의뢰인은 자기편을 든든하게 들어주었으면 하는 변호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으려 한다. 변호사 입장에서도 돈만 준다고 아무나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물론 아주 많이 주시면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특히 나는 소속 변호사에게 일을 다 맡겨 두지 않고 직접 서면을 쓰고 변론을 하고 당사자와 자주 소통을 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변호하려면 40대라는 인생의 황금기이자 변호사로서의 전성기의 소중한 ‘삶’의 한 토막을 그분을 위해 내어드려야 한다. 그런 만큼 내가 하는 일이 단순한 돈벌이를 넘어서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변호가 의미가 있으려면 내가 변호하는 사람이 진짜 억울해야 한다. 의뢰인 개인적으로도 한이 풀리고 사회적으로도 수사나 재판이 보다 정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나도 보람이 있다. 의뢰인이 진짜 억울할수록 우리가 원하는 재판을 받을 가능성도(덩달아 성공보수를 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변호사가 되어 보면 세상에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판사일 때는 순진하게도 판결이 80~90% 이상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유죄인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고 무죄인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는 줄 알았다. 가끔 잘못된 판결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동차 조립 공장에서 간혹 불량품이 나오는 것처럼 이례적이고 비의도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판사를 그만두고 방위사업청에서 수사나 재판을 받는 동료나 부하 직원들을 지켜보면서, 또 법무부 송무심의관으로서 전국의 정부를 당사자로 하는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을 총괄하는 일을 하며 판사들의 판결을 받아보면서 또 변호사로서 다른 판사들에게 판결을 받고 피를 쏟으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보면서 대한민국의 법조계에 잘못된 수사나 판결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가 없는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이, 죄가 적은 사람이 가벼운 형을 받는 것이 그리 당연하고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무지와 불성실과 귀찮음과 편견과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 데 대한 보복의 감정으로, 죄 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고 죄 있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판검사나 경찰들도 밀림 속 강물에 출현하는 악어들처럼 득실거린다는 것도 변호사가 되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변호사는 악어에게 물리지 않고 강을 안전하게 건너게 해주는 뱃사공 같기도 하다.
변호사·의뢰인 첫 만남은 맞선과 같아
의미 있는 사건이 되기 위한 두 번째 요인은 의뢰인의 성품이 기본적으로 나쁘지 않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쁜 사람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고 괴롭히고 착취하고 조종하려는 데 대해 아무런 거리낌도, 주저함도 없는 사람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아무런 잘못도 없이,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에게 아무런 피해를 안 주고 살아가기는 어렵다. 나도 그간 본의 아니게 무수한 잘못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을 것이다. 살다 보면 대부분은 그럭저럭 욕되게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또는 나름대로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런 실수를 하는 사람과, 거리낌 없이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같지 않다. 전자의 분들이 억울함을 밝힐 수 있도록 열심히 변론하고 선처를 구하고 다시 그런 사람이 정상적인 삶의 궤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그 자체로도 보람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그런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이분들도 나를 신뢰하고 존중하고 또 감사해 한다. 그렇게 좋은 감정을 주고받다가 재판 결과까지 좋으면 이분들은 완전히 내 팬이 되어서 일이 다 끝난 이후에도 감사의 마음을 종종 보내오고 다른 분들에게 소개도 해준다.
그 이후에 돌아오는 이러한 유익을 떠나서 이분들과 사건이 끝난 뒤에 계속 연인을 이어가든 말든 간에, 나는 그분들이 인생에서 맞닥뜨린 가장 힘겨운 일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변호사로서 그분과 맺는 관계와 그 관계에서 오가는 감정과 신뢰를 중시한다. 그분에게 의지가 될 수 있도록 중심을 잡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처신을 하며 가장 정확한 정보와 수준 높은 지혜로 적재적소에 조언을 드리고 차갑고도 뜨거운 말과 글로 의뢰인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하는 과정에서 의뢰인이 나를 신뢰하고 나는 의뢰인이 갈수록 지혜와 성숙이 묻어나는 행보를 하는 것을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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