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5·18 광주가 12.3 계엄 막아냈다” [김은지의 뉴스IN]
■방송 : ‘시사IN X 주진우라이브 콜라보 IN 광주’ (https://youtube.com/sisaineditor)
■ 진행 : 주진우 기자
■ 출연 : 우원식 국회의장

“정부 주관 행사라고 ‘정치적 논란 생긴다’는 이유로 5·18 기념사 못하게 했다”
“제 삶을 끌어간 힘이자 부채감이 광주다”
“비상계엄, 국회에 통보 안 한 것은 계엄법 위반”
“결심실 들어간 대통령, 국회 절차 조금이라도 잘못됐으면 하자로 문제제기 했을 것”
“5·18 광주의 민주투사들이 2024년 12월3일 계엄을 막아낸 것”
■ 진행자 / 오늘(5월16일) 광주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우원식 / 지난 12월3일 날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일이 있었잖아요. 사실은 그 해제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굉장히 많은 피해자들이 비상계엄 때문에 희생을 당하셨는데, 그때 그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비상계엄 해제가 국회에서 가능했다고 생각을 해요. 이 5·18 묘역 쪽에서 국회의장이 최초로 그런 비상계엄 해제도 있었으니 여기다 나무를 하나 심자. 그래서 오늘 여기 나무 심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또 물론 이제 내일 모레 광주 5·18 행사가 있으니까.
■ 진행자 / 거기 기념식에서도 기념사도 하시죠?
■ 우원식 / 못 합니다. 못 해요.
■ 진행자 / 아니 왜요?
■ 우원식 / 보훈부가 제가 얘기하면 ‘정치적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그래서 할 수가 없다’고.
■ 진행자 / 야당의 여당의 의장이 아니라, 국민의 그리고 모든 국회의원의 의장인데.
■ 우원식 / 그건 이미 여순 사건 때도, 또 지난 4·3 제주 때도, 또 동학 농민 운동 때도 그게 다 국가기념일인데, 국회의장이 거기 가서 조사도 하고 기념사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국회의장은 중립적인 위치에 있고 그 행사에 맞는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하면 되는 일이고. 지금은 이제 대통령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대표해서 누가 이야기하는 게 좋은데요.
■ 진행자 / 의전 서열 2위 국회의장이 가시는 게 맞는데요.
■ 우원식 / 예, 그런데 이게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라고 국회의장이 하는 게 정치적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 진행자 / 못 하게 했어요?
■ 우원식 / 예. 못 하게 했어요.
■ 진행자 / 아직은 그 정부에 있죠. 자,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광주는 어떤 장소입니까?
■ 우원식 / 저의 시작이죠, 사실. 군대에 있을 때 벌어진 5·18은 정말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 진행자 / 1980년 5월에 국내에 계셨군요.
■ 우원식 / 있었어요. 비상계엄이 확대돼 있을 때니까 계엄군이었죠. 무슨 현장에 나간 건 아니고 원주 KBS 방송국에 계엄군으로 나가 있었던 때였는데. 그때가 이제 제대하기 두 달 전인데 탈영을 할까 말까 정말 고민했어요.
■ 진행자 / 그 정도로 괴로웠습니까? 탈영을 생각할 정도로.
■ 우원식 / 사람 죽은 걸 봤거든요. 그리고 바로 81년 1주기 됐을 때 5월 달에 광주 항쟁 1주기 기념한 시위를 했죠. 그러고서 감옥을 들어갔는데, 1심에서 1년 받았다가 2심에서...
■ 진행자 / 그 시위를 계기로요?
■ 우원식 / 예. 시위를 주도했죠. 1심에서 1년 받았는데 2심 때 최후 진술 때 ‘이 살인 정권과 끝까지 싸우겠다’ 그렇게 해서 3년 받았어요.
■ 진행자 / 그래서 얼마나 사셨어요?
■ 우원식 / 2년 10개월쯤 살았어요.
■ 진행자 / 광주 5·18. 그리고 2년 10개월의 감옥 생활.
■ 우원식 / 그건 이제 저의 청춘의 아주 중요한 대목, 아니 그 이후에 제 삶을 끌어간 힘이 사실은 광주로 대표되어지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 의무감, 부채감, 광주에 대한 부채감이었죠. 그게 저한테 광주죠. 이번에 비상계엄 얘기를 공관에서 밤 10시 반에 듣고 제일 먼저 떠올랐던 장면이 5·18이에요. ‘이거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 사람 크게 다치겠다. 5·18이 그랬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진행자 / 계엄 해제권이 국회에 있습니다. 국회의장은 다른 사람보다 많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많은 고민이 있었을텐데.
■ 우원식 / 이게 굉장히 위험하겠구나 생각했죠. 그렇게 오랫동안 감정적으로도 쌓여 있고 국회를 무시하고 이랬던 거기 때문에 하루 이틀의 계획이 아니겠다는 게 직감 되어지더라고요. 그래서 5·18 광주와 같은 그런 희생이 또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게 위험하더라도 계엄 해제권을 국회가 갖고 있으니 무조건 국회로 가야 되겠다. 공관 주변을 둘러보니까 지키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얼른 차를 타고 국회로 왔죠. 근데 국회로 도착했는데 그 시점에 경찰이 막기 시작을 했어요. 제가 경호대장이랑 같이 왔기 때문에 뚫어볼까 하다가 계엄군 피해서 왔는데 경찰하고 싸우다가 잡혀가면 그것도 말짱 헛일이 되잖아요. 꽝이 되잖아요. 그래서 바로 뒤로 가서 경찰 없는 데 가서 담을 넘었죠.
■ 진행자 / 담을 넘을 때 괜찮으셨어요?
■ 우원식 / 그 정도야 우리가 좀 잘 하는데, 정말 속상하더라고요. 옛날에 뭐 학생 운동하고 뭐 도망치고 그럴 때 담 넘는 거야 아주 다반사였죠. 담 넘는 거 문제는 아닌데 국회의장이 돼서 또 담을 넘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담 넘으면서 굉장히 속상하고 기분도 상하고 그랬어요.
■ 진행자 / 비상계엄 해제 의결안이 통과될 때까지, 그 본회의장의 그 정적이 있었죠. 많은 사람들이 빨리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차분하게 절차대로 법대로 말이죠. 그 의결안을 통과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차분 원식’이라는 말도 생각났어요. 당시 상황 기억하십니까?

■ 우원식 / 그럼요. 평생 잊을 수가 없죠. 저는 그때 직감이 ‘굉장히 오래 준비된 비상계엄’이라는 거였어요. 국회를 그렇게 무시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진짜 이거 절차를 잘 지켜야 되는데 (생각했죠). 이미 그 전에 계엄법에 대해서 절차를 한번 봤어요. 그런데 시작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계엄을 (발령하면) 한쪽에서 계엄했다고 국회로 통보를 해야되는데, 통보하면 그거 가지고 절차를 들어가는데, 통보를 안 했어요. 그거 계엄법 위반입니다. 제가 처음에 “통보가 와야되는데 통보가 오지 않았으므로 절차를 시작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요. 계엄법이 지체없이 통과하게 돼 있는데 2시간이 넘도록 통보가 오지 않았으므로 통보 안 한 거는 한쪽의 귀책 사유다, 그러니 우리는 절차를 시작한다(고 했죠). 그게 (12시)28분이었는데 33분에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들어왔어요. 사정이 변경된 거죠. 더 급해졌어요. 다시 전화를 해서, 그게 38분이에요. 통화가 된 게.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서 사정 변경이 생겼다, 30분 당긴다” 그랬더니 ‘아 의장님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그랬는데 ‘안 된다’ 그러고 딱 끊어서 협의가 된 거예요. 그래서 (새벽) 1시로 정한 거예요. 안건이 그 때도 안 올라와서 안건이 올라온 시간이 언제냐 그랬더니, 한 50분 쯤 가까이 된다는 거예요. 안건이라는 게 이 계엄을 통보를 해야 그거 가지고 안건을 만들 수가 있는데, 통보가 안 왔기 때문에 우리가 그냥 만드는 거예요. 1964년 6·3사태 때 그때 계엄을 7월26일 날 풀었던 경험이 있어요.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의결한 거 그걸 찾아서 그대로 모형을 따 가지고 결의안을 만들었죠. 나중에 (윤석열) 대통령 쪽에서 국방부 결심 지원실 가가지고 국회법 해설집을 갖고 들어갔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무슨 조그마한 하자라도 있었는지 그거 보려고 그랬던 거겠죠. 그러니까 그런 절차를 조금이라도 잘못했으면, 이를 테면 개회 시간을 1시로 정했는데 뭐 59분에 했다거나 그러면 하자로 잡았을 거예요.
■ 진행자 / 그나마 신중하게 차분하게 그 절차를 잘 지켜서 계엄을 해제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웃고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아찔해요. 계엄이 이렇게 해제되면서 광주가, 80년 광주가 2024년 대한민국을 지켰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 우원식 / 그럼요. 광주에서의 희생이,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계엄이라고 하는 것이 국민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또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나라를 얼마나 후퇴시켰는지 너무나 잘 봤거든요. 그걸 극복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요. 그런데 그게 허투루 쓴 시간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5·18 광주에서 땅에 묻히신 우리의 민주투사들이 2024년 12월3일 계엄을 막아낸 겁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대한민국 잘 되겠죠?
■ 우원식 / 잘 될겁니다. 파이팅!
*기사 인용 시 ‘시사IN X 주진우라이브 콜라보 IN 광주’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제작진
프로듀서: 최한솔·김세욱·이한울 PD, 이겨레 인턴PD
진행: 주진우 시사IN 편집위원
출연: 우원식 국회의장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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