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5·18 광주가 12.3 계엄 막아냈다” [김은지의 뉴스IN]

문상현 기자 2025. 5. 16.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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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진행한 빛고을 광주 현지 특집 라이브 방송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출연했습니다. 전체 내용을 확인하기 원하시는 분들은 방송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방송 : ‘시사IN X 주진우라이브 콜라보 IN 광주’ (https://youtube.com/sisaineditor)
■ 진행 : 주진우 기자
■ 출연 : 우원식 국회의장

“정부 주관 행사라고 ‘정치적 논란 생긴다’는 이유로 5·18 기념사 못하게 했다”
“제 삶을 끌어간 힘이자 부채감이 광주다”
“비상계엄, 국회에 통보 안 한 것은 계엄법 위반”
“결심실 들어간 대통령, 국회 절차 조금이라도 잘못됐으면 하자로 문제제기 했을 것”
“5·18 광주의 민주투사들이 2024년 12월3일 계엄을 막아낸 것”

■ 진행자 / 오늘(5월16일) 광주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우원식 / 지난 12월3일 날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일이 있었잖아요. 사실은 그 해제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굉장히 많은 피해자들이 비상계엄 때문에 희생을 당하셨는데, 그때 그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비상계엄 해제가 국회에서 가능했다고 생각을 해요. 이 5·18 묘역 쪽에서 국회의장이 최초로 그런 비상계엄 해제도 있었으니 여기다 나무를 하나 심자. 그래서 오늘 여기 나무 심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또 물론 이제 내일 모레 광주 5·18 행사가 있으니까.

■ 진행자 / 거기 기념식에서도 기념사도 하시죠?

■ 우원식 / 못 합니다. 못 해요.

■ 진행자 / 아니 왜요?

■ 우원식 / 보훈부가 제가 얘기하면 ‘정치적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그래서 할 수가 없다’고.

■ 진행자 / 야당의 여당의 의장이 아니라, 국민의 그리고 모든 국회의원의 의장인데.

■ 우원식 / 그건 이미 여순 사건 때도, 또 지난 4·3 제주 때도, 또 동학 농민 운동 때도 그게 다 국가기념일인데, 국회의장이 거기 가서 조사도 하고 기념사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국회의장은 중립적인 위치에 있고 그 행사에 맞는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하면 되는 일이고. 지금은 이제 대통령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대표해서 누가 이야기하는 게 좋은데요.

■ 진행자 / 의전 서열 2위 국회의장이 가시는 게 맞는데요.

■ 우원식 / 예, 그런데 이게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라고 국회의장이 하는 게 정치적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 진행자 / 못 하게 했어요?

■ 우원식 / 예. 못 하게 했어요.

■ 진행자 / 아직은 그 정부에 있죠. 자,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광주는 어떤 장소입니까?

■ 우원식 / 저의 시작이죠, 사실. 군대에 있을 때 벌어진 5·18은 정말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 진행자 / 1980년 5월에 국내에 계셨군요.

■ 우원식 / 있었어요. 비상계엄이 확대돼 있을 때니까 계엄군이었죠. 무슨 현장에 나간 건 아니고 원주 KBS 방송국에 계엄군으로 나가 있었던 때였는데. 그때가 이제 제대하기 두 달 전인데 탈영을 할까 말까 정말 고민했어요.

■ 진행자 / 그 정도로 괴로웠습니까? 탈영을 생각할 정도로.

■ 우원식 / 사람 죽은 걸 봤거든요. 그리고 바로 81년 1주기 됐을 때 5월 달에 광주 항쟁 1주기 기념한 시위를 했죠. 그러고서 감옥을 들어갔는데, 1심에서 1년 받았다가 2심에서...

■ 진행자 / 그 시위를 계기로요?

■ 우원식 / 예. 시위를 주도했죠. 1심에서 1년 받았는데 2심 때 최후 진술 때 ‘이 살인 정권과 끝까지 싸우겠다’ 그렇게 해서 3년 받았어요.

■ 진행자 / 그래서 얼마나 사셨어요?

■ 우원식 / 2년 10개월쯤 살았어요.

■ 진행자 / 광주 5·18. 그리고 2년 10개월의 감옥 생활.

■ 우원식 / 그건 이제 저의 청춘의 아주 중요한 대목, 아니 그 이후에 제 삶을 끌어간 힘이 사실은 광주로 대표되어지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 의무감, 부채감, 광주에 대한 부채감이었죠. 그게 저한테 광주죠. 이번에 비상계엄 얘기를 공관에서 밤 10시 반에 듣고 제일 먼저 떠올랐던 장면이 5·18이에요. ‘이거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 사람 크게 다치겠다. 5·18이 그랬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진행자 / 계엄 해제권이 국회에 있습니다. 국회의장은 다른 사람보다 많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많은 고민이 있었을텐데.

■ 우원식 / 이게 굉장히 위험하겠구나 생각했죠. 그렇게 오랫동안 감정적으로도 쌓여 있고 국회를 무시하고 이랬던 거기 때문에 하루 이틀의 계획이 아니겠다는 게 직감 되어지더라고요. 그래서 5·18 광주와 같은 그런 희생이 또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게 위험하더라도 계엄 해제권을 국회가 갖고 있으니 무조건 국회로 가야 되겠다. 공관 주변을 둘러보니까 지키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얼른 차를 타고 국회로 왔죠. 근데 국회로 도착했는데 그 시점에 경찰이 막기 시작을 했어요. 제가 경호대장이랑 같이 왔기 때문에 뚫어볼까 하다가 계엄군 피해서 왔는데 경찰하고 싸우다가 잡혀가면 그것도 말짱 헛일이 되잖아요. 꽝이 되잖아요. 그래서 바로 뒤로 가서 경찰 없는 데 가서 담을 넘었죠.

■ 진행자 / 담을 넘을 때 괜찮으셨어요?

■ 우원식 / 그 정도야 우리가 좀 잘 하는데, 정말 속상하더라고요. 옛날에 뭐 학생 운동하고 뭐 도망치고 그럴 때 담 넘는 거야 아주 다반사였죠. 담 넘는 거 문제는 아닌데 국회의장이 돼서 또 담을 넘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담 넘으면서 굉장히 속상하고 기분도 상하고 그랬어요.

■ 진행자 / 비상계엄 해제 의결안이 통과될 때까지, 그 본회의장의 그 정적이 있었죠. 많은 사람들이 빨리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차분하게 절차대로 법대로 말이죠. 그 의결안을 통과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차분 원식’이라는 말도 생각났어요. 당시 상황 기억하십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12월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3층 본회의장 인근 복도에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 우원식 / 그럼요. 평생 잊을 수가 없죠. 저는 그때 직감이 ‘굉장히 오래 준비된 비상계엄’이라는 거였어요. 국회를 그렇게 무시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진짜 이거 절차를 잘 지켜야 되는데 (생각했죠). 이미 그 전에 계엄법에 대해서 절차를 한번 봤어요. 그런데 시작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계엄을 (발령하면) 한쪽에서 계엄했다고 국회로 통보를 해야되는데, 통보하면 그거 가지고 절차를 들어가는데, 통보를 안 했어요. 그거 계엄법 위반입니다. 제가 처음에 “통보가 와야되는데 통보가 오지 않았으므로 절차를 시작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요. 계엄법이 지체없이 통과하게 돼 있는데 2시간이 넘도록 통보가 오지 않았으므로 통보 안 한 거는 한쪽의 귀책 사유다, 그러니 우리는 절차를 시작한다(고 했죠). 그게 (12시)28분이었는데 33분에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들어왔어요. 사정이 변경된 거죠. 더 급해졌어요. 다시 전화를 해서, 그게 38분이에요. 통화가 된 게.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서 사정 변경이 생겼다, 30분 당긴다” 그랬더니 ‘아 의장님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그랬는데 ‘안 된다’ 그러고 딱 끊어서 협의가 된 거예요. 그래서 (새벽) 1시로 정한 거예요. 안건이 그 때도 안 올라와서 안건이 올라온 시간이 언제냐 그랬더니, 한 50분 쯤 가까이 된다는 거예요. 안건이라는 게 이 계엄을 통보를 해야 그거 가지고 안건을 만들 수가 있는데, 통보가 안 왔기 때문에 우리가 그냥 만드는 거예요. 1964년 6·3사태 때 그때 계엄을 7월26일 날 풀었던 경험이 있어요.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의결한 거 그걸 찾아서 그대로 모형을 따 가지고 결의안을 만들었죠. 나중에 (윤석열) 대통령 쪽에서 국방부 결심 지원실 가가지고 국회법 해설집을 갖고 들어갔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무슨 조그마한 하자라도 있었는지 그거 보려고 그랬던 거겠죠. 그러니까 그런 절차를 조금이라도 잘못했으면, 이를 테면 개회 시간을 1시로 정했는데 뭐 59분에 했다거나 그러면 하자로 잡았을 거예요.

■ 진행자 / 그나마 신중하게 차분하게 그 절차를 잘 지켜서 계엄을 해제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웃고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아찔해요. 계엄이 이렇게 해제되면서 광주가, 80년 광주가 2024년 대한민국을 지켰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 우원식 / 그럼요. 광주에서의 희생이,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계엄이라고 하는 것이 국민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또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나라를 얼마나 후퇴시켰는지 너무나 잘 봤거든요. 그걸 극복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요. 그런데 그게 허투루 쓴 시간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5·18 광주에서 땅에 묻히신 우리의 민주투사들이 2024년 12월3일 계엄을 막아낸 겁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대한민국 잘 되겠죠?

■ 우원식 / 잘 될겁니다. 파이팅!

*기사 인용 시 ‘시사IN X 주진우라이브 콜라보 IN 광주’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제작진

프로듀서: 최한솔·김세욱·이한울 PD, 이겨레 인턴PD

진행: 주진우 시사IN 편집위원

출연: 우원식 국회의장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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