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영구 삭제한 장애인 경찰 기사

고찬유 2025. 5. 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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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휠체어 장애인이 보인다.

장애인과 휠체어 상태를 거듭 확인한 뒤 출발해도 되느냐고 묻는다.

10년 전 미국 연수 시절 목도한 장면이 국내 휠체어 장애인 시위 때마다 흑백 필름처럼 뇌리에 재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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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목도한 장애인 이동권
교과서에 적힌 평등, 일상의 차별
불편의 공유보다 불편에 공감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게티이미지

#버스 문이 열린다. 휠체어 장애인이 보인다. 버스기사가 조작 단추를 눌러 입구 발판을 휠체어에 맞추고 들어올린다. 기사가 일어나 출구 앞 공간으로 휠체어를 끈다. 휠체어 바퀴를 바닥에 고정하고 끈이 조이는지 등을 물으며 안전띠를 매 준다. 장애인과 휠체어 상태를 거듭 확인한 뒤 출발해도 되느냐고 묻는다. 장애인 승객의 허락이 떨어지자 기사가 운전석에 앉는다.

10년 전 미국 연수 시절 목도한 장면이 국내 휠체어 장애인 시위 때마다 흑백 필름처럼 뇌리에 재생된다. 글로 풀면 별 감흥 없는 10분가량의 단순 작업이다. 각인된 장면은 또 있다. 당연하다는 듯 평온한 비장애인 승객들 반응이었다. 설마 하는 맘에 종종 버스를 탔다. 존중은 한결같았다. 한적한 대학 도시라 그런가 싶었다. 웬걸, 북미 대륙을 일주하면서 해발 3,659m의 로키산맥이든, 섭씨 50도의 데스밸리든, 그 어디든 대수롭지 않게 휠체어 장애인을 만났다. 두 다리인지, 바퀴인지 이동 방식만 다를 뿐 대자연에 속한 인간임은 같았다.

#작년 말 무려 17년 전에 쓴 기사를 영구 삭제했다. 당사자 요청에 따라 기사를 몽땅 지운 건 처음이다. 2006년 말 경찰 창설 61년 만에 선발된 장애인 경찰의 인터뷰 기사였다. 당시 취재 기록엔 이렇게 적혀 있다. '기사로 소개하는 게 오히려 장애인 차별 아닌가 고민. 경찰관직이 장애인고용촉진법상 의무고용 직종에서 제외돼 있다는 사실 환기. 2주간 설득. "제 말이 장애인에게 정말 힘이 될까요" 되물음. OO에 내려가 만남. 실명 게재 허락. 장애인 경찰이 기사가 안 되는 날을 소망.' 우려와 달리 응원의 댓글이 달렸다.

잊고 있던 그 기사의 방문자 수(PV)가 갑자기 올라가길래 이상하다 싶던 차였다. 관련 부서에 삭제 요청 이유를 물었더니 "(그의) 아들이 부끄러워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몇 군데 수정으로 마무리하려던 생각을 접고 흔쾌히 삭제에 응했다. 부자의 고심이 얼마나 깊었을까, 교과서에 적힌 평등은 일상에 널린 차별에 무력했으리라.

장애인의날(4.20) 다음 날, 1년여 만에 재개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에 만감이 교차한다. 혐오와 차별이라는 이론적 논거는 불편과 불법이라는 현실적 불만에 짓눌린다. 시위 그 자체에 매몰된 논쟁은 우리가 응당 누리나 장애인에겐 불허된 이동권이라는 본질에 재갈을 물린다.

'우리는 왜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중략) 건너갈 수 없는 횡단보도, 들어갈 수 없는 식당과 화장실, 우리가 살 땅은 어디입니까.' 1984년 휠체어 장애인 김순석씨가 지하셋방에서 서른다섯 삶을 마감하며 유서에 남긴 질문은 여전히 답을 기다린다.

그럼에도 궁리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이용하는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휠체어 장애인의 숱한 죽음과 투쟁 덕에 만들어졌다는 내력을 알려고 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애초 '정상적인 몸'이라는 구태에 기대 배제의 공법으로 설계된 공공시설의 문제점을 고민하지 않는다. 당신의 일상이 나의 일상이 되게 해 달라는 몸의 절규를 사유하지 않는다.

대선 주자가 대화를 약속했다는 소식에 안도했다가 정작 발표된 공약엔 없는 걸 확인하고 허탈하다. 일부 의원이 '전장연 금지법'을 발의했다는 보도엔 말문이 막힌다. 정치의 본령은 무엇인가? 우리의 불편을 공유하기보다 그들의 불편에 공감하긴 어려운가? 장애와 비장애는 어떻게 구별하나? 헬렌 켈러가 통찰한다. "장애는 마음에 있다. 사고하지 않으면 진짜 장애인이다."

고찬유 사회정책부문장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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