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995년, 2025년 '말러리안'이라 행복하다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5. 5. 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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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페스티벌' 5월 8~18일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서 열려
말러를 알아본 선구적 음악가
멩엘베르흐가 1920년 첫 개최
105년간 3번만 열린 음악축제
RCO와 세계적 악단들 총출동
몰려든 관객에 연일 전석매진
연극과 결합된 개막공연 독특
차기 수석 메켈레도 현장 달궈
1번 교향곡, 춤추듯 밝게 해석
도심 공원·박물관서 연계공연
객석의 한계 허물고 축제 펼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에 말러 페스티벌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Jessie Kamp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음악은 왜 특별할까. 100여 년 전 선율이 여전히 사람들을 눈물짓고 전율케 하는 비결은 뭘까. 그 음악에 담긴 삶이란 또 무엇인가. 질문을 품고 세계 각지의 음악가와 애호가들이 이곳에 모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음악의 전당'으로 불리는 클래식 공연장 콘세르트헤바우가 5월 8~18일(현지시간) 개최한 말러 페스티벌이다. 관객들은 '답은 음악 안에 있다'는 말러의 말을 좇아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상주단체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악단이 말러 교향곡 11개곡 전곡(미완성 10번 포함)을 매일 밤낮으로 연주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에서 열린 말러 페스티벌 중 지난 9일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하는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Eduardus Lee

콘세르트헤바우의 말러 페스티벌은 첫 개최 이래 올해까지 105년 동안 단 세 번 열린 역사적 행사로 말러의 음악이 열혈 팬 '말러리안'을 양산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말러는 생전엔 지휘자나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날렸을지언정 작곡가로선 혹평과 좌절에 시달렸는데, 사후 50여 년이 지나서야 재조명받은 결과다. 미국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1960년대 뉴욕 필하모닉과 말러 전곡 사이클을 녹음하면서 그 위상을 높인 인물로 자주 거론된다. 우리나라에선 1999~2003년 지휘자 임헌정과 부천 필하모닉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내에서 처음 말러 전곡 연주를 선보여 붐을 일으켰다.

말러의 혁신성을 알아본 선구적 음악가는 이전에도 있었다. 대표 주자가 1회 말러 페스티벌 기획자인 네덜란드 음악가 빌럼 멩엘베르흐다. 말러와 학연·지연도 없던 암스테르담이 이 페스티벌을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RCO에서 1895~1945년 무려 50년간 수석 지휘자를 지낸 멩엘베르흐는 1903년 말러를 콘세르트헤바우로 초청해 RCO를 직접 지휘하게 하며 인연을 맺었다. 말러도 암스테르담을 '제2의 음악적 고향'이라고 편지에 썼다. 오스트리아 제국 칼리슈테(지금의 체코)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함부르크·부다페스트·빈·뉴욕 등을 떠돌았던 말러에게 암스테르담은 따뜻한 환대와 동료애를 안겨준 도시였다. 멩엘베르흐는 말러가 향년 50세로 사망한 후 1920년 5월에 축제를 열어 음악적 유산을 기렸다.

작곡가 말러

말러 페스티벌은 1995년에 사상 두 번째로 개최됐다. 이어 2020년 3월에 100주년 축제를 예정했다가 코로나19 탓에 취소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준비했던 프로그램은 열흘간 온라인으로 중계되는 데 그쳤다. 시몬 레이닝크 콘세르트헤바우 대표는 "10년에 걸쳐 준비한 축제가 무산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올해 단 5년 만에 세계적 단체들의 긍정적인 협조와 열정 덕분에 다시 실현됐다"며 "말러의 음악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말러는 시대를 초월해 보편적인 인간 경험을 주제로 삼았어요. 점점 더 시끄러워지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게 우리가 계속해서 말러로 돌아가는 이유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관람한 개막 공연과 교향곡 1~3번 연주는 말러리안도, 말러 초심자도 두루 즐기는 분위기 속에 연일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특히 개막 공연 '디어 말러!'는 연극과 클래식 연주를 합친 독특한 구성이 돋보였다. 남녀 배우가 각각 무대와 객석을 활보하며 말러 주변 인물로 분해 그의 인생 이야기를 독백했고, 이어 네덜란드 필하모닉과 지휘자 로렌조 비오티가 관련 곡의 일부를 연주했다. 예컨대 말러의 여동생은 어린 시절 죽은 남동생 에른스트에 대해, 부인 알마는 첫딸 마리아의 죽음에 관해 얘기했다. 각각 교향곡 1번 3악장, 교향곡 '대지의 노래' 3악장으로 연결됐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어느 연주자로 분한 남자 배우는 음악감독 말러의 괴팍했던 완벽주의자 면모를 익살맞게 증언해 웃음을 자아냈다.

축제 초반 백미는 이튿날인 9일 밤 열린 클라우스 메켈레와 RCO의 1번 교향곡 연주였다. 2027년 수석 지휘자로 취임 예정인 젊은 마에스트로와 오케스트라의 궁합을 고대한 객석 반응은 역시나 뜨거웠다. 메켈레는 춤추듯 다소 밝게 곡을 해석했고, 축제의 서막에 어울리는 느낌을 풍겼다. 악단은 메켈레 특유의 활기찬 몸짓에 곧바로 섬세하게 반응했다. 특히 4악장 중 호른 8대의 기립 연주 등 공간 전체를 감싸는 관악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이반 피셰르가 지휘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2번 '부활', 아시아 악단 중 유일하게 참가한 NHK 심포니와 거장 파비오 루이지의 3·4번도 여지없이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후 축제 여정에서는 얍 판 츠베덴과 시카고 심포니의 6·7번도 주목받았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이기도 한 츠베덴은 RCO 악장 출신으로, 전용 공연장 포디움에 금의환향해 14~15일에 연주를 선보였다. 또 메켈레는 '천인 교향곡'이란 별명이 붙은 8번의 데뷔 무대를 RCO와 함께 16일에 치렀다. 마지막 날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할 예정이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건강상 이유로 불참하고, 핀란드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가 자리를 대신한다.

축제는 비싼 푯값(최대 235유로·약 37만원)과 한정된 홀 객석의 한계도 허물었다. 도보로 8분 거리인 폰덜파크에 10m 대형 스크린을 갖춘 1500석 규모 무료 야외 공연장을 만들어 매일 저녁 교향곡 실황 연주를 들려줬다. 말러재단 등이 후원한 특별 제작 다큐멘터리 등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맥주·피자 따위를 파는 푸드트럭과 함께 남녀노소 누구나 즐겼다.

교향곡 연주 외에 말러가 남긴 가곡, 피아노 사중주 등의 프로그램도 다채로웠다. 10일 낮 리사이틀홀에선 영국 거장 피아니스트 줄리어스 드레이크가 우리나라 바리톤 박주성, 스코틀랜드 성악가 베스 테일러와 말러 가곡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를 재해석해 들려줬다. 국립 박물관에선 1900년대 초 발명된 반자동 연주기계 '피아놀라'를 통해 말러가 생전 기록해둔 연주를 듣는 이색 프로그램도 열렸다. 이 박물관에는 말러가 7번 교향곡 작곡의 영감을 받은 렘브란트의 그림 '야경', 네덜란드 방문 당시 찍힌 사진 등 자료도 전시돼 있다.

[암스테르담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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