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억만장자 벤앤제리스 창업자가 美상원서 체포된 이유

유진우 기자 2025. 5. 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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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워싱턴 D.C. 상원 청문회장.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 인준 청문회가 한창인 가운데, 흰머리에 검은 안경을 쓰고, 파란 셔츠를 걸친 노신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굶주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

이 노인은 의회 경찰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와중에도 “의회가 가자지구 내 가난한 아이들을 죽이기 위한 폭탄을 사고 있다”며 “그 돈은 메디케이드에서 가난한 미국 아이들에게 쓰일 돈”이라고 외쳤다.

빌 캐시디 상원의원(공화당)이 “시위자를 퇴장시켜 달라”고 경찰에 요청하자 의회 경찰은 이 노인을 청문회장 밖으로 끌어냈다.

AP에 따르면 이 노인은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Ben & Jerry’s) 공동창업자 벤 코헨(74)이었다.

벤 코헨 밴앤제리스 공동 창업자가 14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워싱턴 D.C. 상원 청문회장.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 인준 청문회장에서 끌려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코헨을 경범죄로 체포했다. 이 혐의는 최대 90일 구금 혹은 500달러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코헨은 유대인이다. 그러나 본인 정체성과 별도로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 정책을 비판해왔다. 2021년 벤앤제리스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에서 우리 아이스크림이 팔리길 원치 않는다”며 제조·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이 결정은 국제적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코헨은 뉴욕타임스(NYT)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면서도 일부 정책에 반대할 수 있다”며 “이스라엘 정책 비판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로 인해 미국 내 9개 주에서 밴앤제리스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다.

코헨은 최근에도 전 폭스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과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량학살 무기를 공급하는 이상한 관계”라고 비판했다.

코헨이 벌이는 사회활동은 가자지구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2016년 돈 선거를 비판하는 ‘깨어나는 민주주의(Democracy Awakening)’ 시위에서 체포된 경력이 있다. 2023년에는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안 어산지 지지 시위에서 건물 입구를 봉쇄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벤앤제리스는 미국 정치권에서 ‘반(反)트럼프 선봉장’으로 알려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지역구 버몬트주(州)에서 1978년 시작했다.

미국 슈퍼마켓에서 판매중인 밴앤제리스 아이스크림. /로이터뉴스1

코헨은 선천적인 후각장애(anosmia)를 앓았다. 그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 대신, 다양한 식감을 강조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그는 중학교 동창 그린필드와 1만2000달러 자본금을 들고 덩어리(chunk) 가득한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브랜드 밴앤제리스를 열었다. 사업 시작 3년 만에 밴앤제리스는 ‘세계 최고 아이스크림’이라는 찬사와 타임지(紙) 표지를 장식했다.

코헨과 그린필드는 사회와 환경에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할 때 수익이 따라온다는 지론을 가지고 경영한다. 밴앤제리스는 1988년부터 세전 총 수입 7.5%를 소외된 청소년 교육과 일자리 제공 등에 썼다.

이후에도 벤앤제리스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기후변화 대응 시위에도 꾸준히 사회적 목소리를 내왔다.

벤앤제리스 전 최고경영자(CEO)였던 제프 퍼만은 허핑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벤앤제리스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회 정의 단체”라고 말했다.

코헨은 2000년 벤앤제리스를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에 3억2600만달러(약 4400억원)에 매각했다.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지만, 사회 활동가로서 코엔의 삶은 멈추지 않았다.

2021년 이스라엘 베에르 투비아에 있는 밴앤제리스 공장에서 노동자가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다. /로이터뉴스1

매각 당시 코헨과 그린필드는 벤앤제리스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니레버로부터 ‘독립 이사회’ 운영권을 확보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립 이사회는 제품 품질, 사회적 사명 관련 활동 등에 대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일각에서는 벤앤제리스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고수할수록 소비자 분열을 야기하고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비자 중 38%는 기업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할 경우 해당 기업 제품을 보이콧할 의사가 있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벤앤제리스가 추구하는 ‘가치 중심 경영’이 오히려 브랜드 충성도를 높인다고 반박했다. 특히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북돋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니레버에 따르면 벤앤제리스는 글로벌 매출 연 10억유로(약 1조4700억원)를 넘는 핵심 브랜드로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치 전문매체 악시오스는 “코헨은 기업가로서 성공을 사회 운동 동력으로 삼는 인물”이라며 “이번 상원에서 시위와 체포 역시 그가 오래 유지한 활동가 자본주의(Activist Capitalism) 신념의 연장선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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