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윤석열 탄핵을 ‘축하’한다는 것 [찾아가는 독자위원회]

지난해 9월이었다. 대구시 북구에서 나른한책방을 운영하는 백소현 대표는 〈시사IN〉을 뒤적이다가 ‘찾아가는 독자위원회(찾독위)’ 기사를 읽게 됐다. 독자가 있는 곳으로, 지역 서점으로 기자를 보내는 형식이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다. 백씨는 신청 메일에 보고 싶었던 기자 이름까지 콕 찍어서 적어 보냈다. 지역 서점에서 모임을 꾸리다 보면 늘 어려운 게 저자 섭외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됐다지만, 대개 서울에 있는 사람을 대구까지 초대하는 일은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예상하고 결심도 했지만, 책 팔아서 버는 돈으로 꾸리는 생활은 늘 빠듯했다. ‘따박따박’ 돌아오는 월세를 근심하며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날이 이어졌다. 〈시사IN〉과 2025년 4월로 모임 날짜를 조율하는 통화를 마친 백씨가 전화를 끊고 가장 먼저 한 생각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내년 4월까지 서점을 운영할 수 있을까···.’
다행히 나른한책방은 오늘도 운영 중이다. 책 판매만으로는 월세를 마련할 수 없어서 두부를 만들고,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비건 음료와 간식도 판다. 어린이와 동물을 환영하는 문턱 낮은 서점을 드나드는 손님들과 책만 읽지는 않는다. 영화를 보고, 뜨개질을 하고, 산행을 간다. 윤석열 탄핵이 인용된 지난 4월4일도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백씨는 책방 앞 입간판에 ‘축 탄핵, 전 도서 5% 할인’ 문구를 적어두었다. 작지만 큰 용기였다. “서점 안에서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엄청 긴장했어요. 화내시면 어떡하지(웃음).” 다행히 그런 손님은 없었다. 나른한책방은 3월13일 대구·경북 지역 독립 서점 26곳이 발표한 성명 ‘서점은 광장이다’에 이름을 올린 한 곳이기도 하다. 길지만 일부를 인용한다.
“우리는 서점인으로서 책을 통해 시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공동체 내에 다양성을 표현하며, 건강한 토론 문화를 증진하고 함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독립 서점은 시민들의 다양한 생각이 흐르는 생동하는 공간이자 가장 일상의 단위에서 만나는 광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랜 시간 기득권 세력은 대구·경북을 분열과 극단의 정치 도구로 이용해왔습니다. 이곳은 윤석열 당선에 기여한 지역이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분열의 최전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곳은 삶의 터전이자 일터이며, 가족과 이웃이 함께 살아가는 장소입니다. 우리의 광장이 나의 가족과 이웃을 분열과 극단에서 구하는 광장이기를 바랍니다.”

4월12일 찾독위가 열린 나른한책방은 그야말로 작은 광장이었다. 강현구·김미진·김한순·나혜민·이정례·이정미·이현정·추현지·최선미(가나다순) 독자가 ‘명태균과 황금폰’을 다룬 〈시사IN〉 제912호부터 탄핵 특별호로 꾸려진 제917호 ‘다시, 민주주의’까지를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다. 오전 11시에 시작된 모임은 오후 2시까지 세 시간 넘게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모인 독자 모두 ‘TK(대구·경북)의 딸’들이었다. 〈시사IN〉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대구에서 민주주의자로 사는 일의 고단함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내 몸과 피를 만든 고향을 마냥 미워할 수 없어서 누군가는 눈물짓기도 했다. 물론 그보다 긴 시간 더 자주 웃으며 모임이 진행됐다.
12월3일과 4월4일은 한국 현대사만이 아니라 각 개인의 역사에서도 ‘특별한’ 날이 되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또렷이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김한순씨는 최근 취미로 하고 있는 수영장 탈의실에서 혼자 웃는 사람이었다. “‘파면한다’ 나오기 직전까지 마음을 엄청 졸이고 있었어요. 다들 ‘우짜노’ 한숨을 쉬는데 저는 계속 웃음이 나는 거예요. 어찌나 눈치가 보이던지···.”
계엄과 탄핵 사이에서 이들이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부모님과 정치적 견해가 달라 충돌했던 경험을 꺼내놓은 이정례씨는 다른 독자들은 가족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묻기도 했다. 이현정씨와 추현지씨는 이사까지 고려할 정도로 고립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유튜브나 기사 댓글마다 ‘대구·경북 너네는 따로 나라 만들라’고 하잖아요. ‘대구에도 민주시민 있다’고 답을 다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정말 힘들어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탄핵 특별호인 제917호 ‘다시, 민주주의’로 이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당시 표지 이미지를 떠올리는 ‘오래된’ 독자도 있었다. 당시에는 표지 아랫부분을 찢었는데(제496호), 이번에는 표지 윗부분을 찢으면서 얼굴을 보이지 않게 ‘세심히’ 배려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제917호만큼이나 부산 세계로교회가 만든 개신교 대안학교를 다룬 제914호 커버스토리 ‘위험한 양성소’도 관심사였다. 부산 세계로교회가 세운 이 대안학교를 다룬 커버스토리 기사를 읽고 이정미씨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라 ‘소설’ 같았다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 진짜 이런 세상이 있다고? 아직 어린 10대들에게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아닐까, 조금 착잡했어요.”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을 다룬 제916호 ‘타들어가다’는 이들에게 ‘남의 일’이 아니어서 더 주의 깊게 읽을 수밖에 없는 호였다. 직접 찍은 고운사 사진을 찾아 보여주는 독자도 여럿이었다. 민화를 그리고 있는 김미진씨는, 언론에는 크고 유명한 문화유산 위주로 피해가 알려졌지만, 작은 암자 여럿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알려주었다. “같이 그림 그리는 선생님 중에 시댁이, 친정이 해당 지역에 있는 경우가 있었어요. 다른 대형 참사에 비해 거리감이랄까, 친밀도가 크게 달라서 몹시 우울해지더라고요. 그 덕분에 다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세월호도, 이태원 참사도, 가까이는 제주항공 참사까지 피해자들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요.”
나혜민씨는 제917호 ‘임보 일기(불탄 산의 주인들, 침묵하는 사회)’를 언급하며 〈시사IN〉이 산불 보도에서 ‘인간’의 피해 위주로만 다루지 않아서 좋았다고 짚었다. 이날 찾독위에 동행한 문준영 수습기자는 기사에 쓰지 못한 산불 현장 취재 후기를 들려주었다. “취재하면서 산에 사는 동물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걱정돼서 물어봤어요. 그런데 서재철 녹색연합 연구위원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마 동물들은 그래도 도망갈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입니다.’ 그 말이 취재를 마치고도 오래 마음에 남아 있어요.” 문 기자는 ‘고령화와 재난’에 대해 품게 된 질문을 나누기도 했다. “대피하라고 외치며 다니는 사람도 할머니·할아버지이고, 불을 끄는 사람도 할머니·할아버지였어요. 취재 다녀와서 해당 마을의 인구통계를 검색해보니까 평균연령이 이미 환갑 이상이더라고요. 재난이 고령화와 만나면서 더 증폭되는 건 아닐까···, 숙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보통 사람들’이어서 마음에 든다
제916호에선 특별한 지면 편집 방식이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제916호 상단에는 3월25일 한강을 비롯해 작가 414명이 발표한 탄핵 촉구 성명 속 문장들이 발췌돼 각 장마다 한 줄씩 실려 있다. 추현지씨는 “종이 잡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재미와 묘미가 느껴져서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지면 매체의 묘미는 특히 사진 지면에서 도드라진다. 조남진 사진팀장이 〈시사IN〉을 여는 페이지인 ‘포토IN’과 포토저널리즘을 맛볼 수 있는 ‘시선’, 취재 현장에서 담은 아까운 한 컷을 담은 ‘사진의 조각’ 등의 사진 지면을 설명하자 “이래서 종이로 뉴스를 봐야 하는구나”라는 호응이 나오기도 했다. 온라인으로 봤을 때와는 다른 감각이 열린다는 평이었다.
좋아하는 연재로는 은유 작가의 ‘먹고사는 일’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전태일의료센터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연재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정기적으로 읽을 수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먹고사는 일’이 실리는 호를 가장 기다린다. 백소현 대표는 은유 작가의 인터뷰 대상이 ‘보통 사람들’이어서 마음에 더 든다고 말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 300명이 만나지 않는 사람들을 은유 작가님이 만나고 있는 것 같아요.” 제913호에 실린 심아정 독립연구자의 인터뷰도 그랬다.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일이 만드는 힘과 변화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평이다.
나혜민씨는 관습적으로 쓰는 표현들을 〈시사IN〉이 보다 섬세하게 다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우리는 불과 넉 달 전에 계엄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잖아요. 이번 대선은 계엄 이후에 열리는 선거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정치 기사에서 자주 쓰는 ‘관전 포인트’ 같은 표현이 계속 눈에 거슬리는 거예요. 뭐랄까, 언론은 당사자가 아니라 외부자였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슬프더라고요.”
※열두 번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는 6월13일 제주 ‘어떤바람’(@jeju.windybooks, 064-792-2830)에서 열립니다. 2025년 하반기에는 동해·인천·광주 등에서 모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사IN〉 독자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은 동네서점, 혹은 이미 〈시사IN〉 읽기 모임을 하고 있는 단체의 신청도 환영합니다(문의: ilhostyle@sisain.co.kr).
대구·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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