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농촌] 우리 집 모 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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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 우리나라 벼농사 기계화율이다.
하지만 불과 반세기 전, 그러니까 지금 중장년층이 자라나는 새싹들이고 어르신들은 잘생긴 나무 같은 청년이던 그때, 벼농사는 볍씨 뿌려 모 키우고 그 모를 무논에 심어 물 대고 피 뽑으며 애지중지 나락으로 길러내 마침내 거둘 때까지, 참으로 무수한 손길이 가는 중노동이었다.
모내기철을 맞아, 이앙기도 없던 1970년대 이전의 손모내기 풍경을 빛바랜 사진으로 돌아본다.
농번기 가정실습이라 우리도 부모님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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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 우리나라 벼농사 기계화율이다. 하지만 불과 반세기 전, 그러니까 지금 중장년층이 자라나는 새싹들이고 어르신들은 잘생긴 나무 같은 청년이던 그때, 벼농사는 볍씨 뿌려 모 키우고 그 모를 무논에 심어 물 대고 피 뽑으며 애지중지 나락으로 길러내 마침내 거둘 때까지, 참으로 무수한 손길이 가는 중노동이었다. 오죽하면 쌀 미(米) 자를 쪼개 ‘여든여덟번 손이 가야 쌀 한톨을 얻는다’고 뜻을 새겼을까. 모내기철을 맞아, 이앙기도 없던 1970년대 이전의 손모내기 풍경을 빛바랜 사진으로 돌아본다.

모 심는 날은 새벽부터 분주했다.
부모님은 못자리에서 모를 쪄선
지게에 지고 수레에 실어 논으로 옮겼다.
농번기 가정실습이라 우리도 부모님을 도왔다.

논에는 마을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나이 든 어르신들은 못줄 잡는 ‘못줄잡이’,
논 주인과 상일꾼들은 모춤 나누는 ‘모쟁이’를 했다.
나머지는 무논에 들어가 모를 심는 ‘모잡이’였다.

모잡이들이 못줄을 따라 모를 심고 나면
못줄잡이는 “줄 넘어간다” 외치며 줄을 옮겼다.
그러면 모잡이들은 뒷걸음질해 다음 모를 심고
모쟁이들은 바지런히 모춤을 나눴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모잡이는 종일 모를 심느라 허리가 끊어지고
모쟁이는 종일 뛰어다니니 파김치가 되고….
그러니 못줄잡이가 장단을 잘 잡아야 했다.
“자, 어여 드시고들 하세요!”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새참 시간.
흙물 튀긴 얼굴로 논둑에 모여 앉아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그 나물에 그 밥인데 어찌나 맛있던지.

남은 모 마저 심을 땐 오뉴월 볕이 참말 미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후진하던 엉덩이가 툭 논둑에 닿으면
받아쓰기 백점 맞은 것보다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한 마지기를 끝내다니,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동네 사람 모두 한달 내내
품앗이 모심기 하느라 골병이 들었지만
돌아보면 그때처럼 많이 웃은 적도 없다.
다들 한마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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