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기후시대] 올해도 벼멸구 퍼질라…폭염에 속타는 농심
충남·전북·전남·경남 등지 피해
살충제 추가 살포에도 역부족
평년보다 수확량 90% 줄기도
지난해 7~9월 고온탓 개체 ↑
올여름도 무더위 전망에 고심

“아무리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지만 이상기후 탓에 갈수록 피해가 심해지는데 손쓸 방법이 없어 갑갑합니다.”
전남 보성군 미력면에서 26.4㏊(8만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는 박장근씨(64)는 지난해 9월 폭염으로 재배면적 가운데 80%에서 벼멸구 피해를 봤다. 박씨는 “보통 등숙기인 8월까지 두세 차례 살충제를 살포하면 벼멸구 같은 해충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데, 지난해엔 세차례나 추가 살포 했지만 피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허탈해했다.
지역특산품인 ‘한산소곡주’를 생산하기 위해 찰벼를 대량 재배하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 일대 농가도 벼멸구 직격타를 맞았다.
벼멸구 피해로 지난해 수확량이 평년보다 90% 가까이 줄었다는 벼농가 김종은씨(78·한산면 단상리)는 “논 11㏊(3만3000평) 중 절반이 찰벼인데 8월말부터 벼멸구가 보이더니 눈 깜짝할 새 온 필지에 다 퍼졌다”며 “그나마 일찍 심은 벼는 바로 수확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광역방제기를 써도 역부족이라 벼멸구가 벼를 빨아 먹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박관구 한산농협 조합장은 “공동방제를 3회 진행하고 벼멸구 살충제를 추가로 넣기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전북과 경남 등지에서도 벼멸구가 발생해 전국 1만7732㏊(국고 지원 기준)가 피해를 봤다.
원인은 이상기후에 따른 가을철 고온현상으로 분석된다. 벼멸구는 고온성 해충으로 발육 최적 온도는 27∼33℃이며 평균기온 20℃ 이하에서 활동이 둔화한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2024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벼멸구 생육기(7∼9월) 전국 평균기온은 26.3℃로 평년(23.4℃)보다 2.9℃ 높았다. 특히 9월 평균기온이 24.7℃에 달해 평년(20.5℃)이었으면 활동성이 떨어졌을 벼멸구의 활력이 왕성했다.
전남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지난해 9월 계속된 고온과 폭염으로 해충의 세대교체 주기가 단축돼 평년에 비해 한 세대가 더 늘면서 다량으로 증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올여름도 평년보다 무더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기상청이 최근 발표한 3개월 전망에 따르면 3월 기준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점 등을 감안할 때 5∼7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농가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미력면에서 6.6㏊(2만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는 양인수씨(60)는 “올해도 기온이 높으면 벼멸구 같은 해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경험상 약제는 크게 효과가 없는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아픔을 딛고 모내기를 준비하는 김씨는 “종잡을 수 없는 기후 탓에 늘 불안하다”며 “올해 방제를 언제, 무슨 약으로 해야 하나 고심”이라고 한탄했다.
이문균 보성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는 “병충해와 도복에 강한 품종 보급이 늘었고 육묘단계에서도 고가의 처리제를 사용하고 있지만 자연재해 앞에선 별 소용이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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