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美 특허 출원 1호’는 애국지사 권도인
1905년 인천항에서 17세 소년이 하와이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함께 승선한 노동 이민자 중 눈에 띄게 어린 나이였다. 하와이 카우아이섬 콜로아 지역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땀 흘려 번 돈으로 조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5년 후 그는 22세 나이로 대한인국민회 콜로아지방회의 회장이 됐다. 애국지사 권도인(1888~1962) 선생의 이야기다.
미국에서 특허를 출원한 첫 한국인이 권도인 선생이었다는 사실이 15일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날 특허청은 광복 80년 및 발명의 날 60주년을 맞은 올해 ‘주요국 재외 한국인의 발명, 특허 출원·등록 등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진행해 이런 역사적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권 선생은 1920년 9월 14일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에 ‘재봉틀 부속 장치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다. 재봉틀 본체가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쿠션이 달린 부속 장치를 개발한 것이다. 특허 등록은 1921년 9월 27일에 이뤄졌다.
권 선생은 1939년 특허 출원한 ‘대나무 커튼’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사업가로 성공을 거뒀다. 대나무 커튼은 대나무로 만든 발에 천을 덧대 만들었다. 바람이 잘 통하면서도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어 무덥고 습한 하와이에서 각광받았다. 그는 사업 수익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기부하고, 대한인국민회 등 독립 단체에서 활동하며 모금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대나무 커튼의 주요 원료를 수입할 수 없게 되자, 암막 커튼을 개발해 사업의 위기를 극복했다. 당시 하와이는 일본군의 추가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창문과 문틈을 두꺼운 천이나 종이로 가리도록 민방위 정책을 폈는데, 이에 적합한 커튼을 만든 것이다.
배우자 이희경(1894~1947) 여사도 하와이에서 후원금 모집 등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였다. 이 여사는 자녀와 함께 귀국해 3·1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정부는 권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1998년)을, 이 여사에게는 건국포장(2002년)을 추서했다. 이들은 2004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함께 안장됐다.
15일 특허청이 대전 현충원에서 연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권 선생의 외손자 폴 아리나가씨는 “할아버지께서 발명가인 것은 알았지만 1호 특허 출원자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이번 소식을 듣고 가족 모두가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권 선생 부부의 독립운동은 자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맏딸 마거릿 배는 ‘두 ‘이민의 꿈(The Dreams of Two Yimin)’이라는 제목으로 하와이 한국인 이민자의 역사를 다룬 저서를 쓴 작가로 활동했고, 막내딸 에스더 권씨는 인권 변호사이자 여성 운동가로 이름을 알렸다. 손자 아리나가씨는 어머니(에스더 권)에 대해 “올해로 96세인 어머니는 한국에 대한 사랑이 깊다”고 말했다. 그는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기업가 정신과 발명가 정신을 통해 한국이 이만큼 발전한 것을 본다면 정말 기뻐하실 것”이라고 했다.
특허청은 이날 ‘한국인 1호 미국 특허 출원’ 내용을 담은 권 선생의 새로운 묘문을 공개하고, 특허청 청사 ‘발명인의 전당’에 독립과 발명을 주제로 한 기획 전시실을 열었다.
한편 특허 출원은 권 선생보다 늦었지만, 미국에서 처음으로 특허 승인을 받은 것은 박영로 선생(생몰년 미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 선생은 권도인 선생보다 이틀 늦은 1920년 9월 16일 낚싯대와 관련한 특허를 출원했으며, 특허 등록은 권 선생보다 4개월 빠른 1921년 5월 이뤄졌다. 박 선생은 재미 독립운동 단체인 ‘한국통신부’ 서기로 활동했다. 또 애국지사 강영승(1888∼1987) 선생도 미국에서 특허를 등록한 발명가였다는 점이 새롭게 밝혀졌다. 김완기 특허청장은 “발명을 통해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선열들의 정신은 오늘날 과학기술 기반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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