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50년 전 소년공이 써내려간 청춘들의 초상화

김진형 2025. 5. 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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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하 작가 자전적 장편소설
소년공 성장담 라오스서 회고
유년시절 재봉사·가족 일화 투영
30대 데뷔 전태일 문학상 수상
▲ 지난해 홍수로 물이 불어난 메콩강의 모습을 이종하 소설가가 찍었다. 이 소설가는 소설에서 “내가 서툴러도, 내가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라오스의 사람들이 나는 좋다.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사람들과 나도 섞여 살고 싶다”고 썼다.

어린 시절의 주름을 다시 꺼내 살핀다. 후일담 소설은 자기 고백이자 청춘의 초상으로 읽힌다.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면 여전히 아프다. 그럼에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견디지 못하고 쓴다. 이제 조금씩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인다.

춘천에서 닭갈비를 팔며 소설을 쓰는 ‘아재’ 이종하는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왔다. 아니, ‘견뎌왔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아버지가 두 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전북 익산의 외갓집에서 살았다. 13살 이후로는 경기도 성남에서 혼자와 다름없이 성장하며 재봉사로 일했다. 중·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수료했다.

그의 장편소설 ‘소년공, 1974’는 자전적 성격의 성장담이다. 63세에 접어든 작가가 50년 전인 1974년의 일을 기억한다. 소설은 주인공 ‘종원’이 1970년대 한국과 비슷한 환경인 라오스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구조로 짜였다. 그 시절 처음 일하게 된 안경 렌즈 공장에서는 이틀을 채 버티지 못했고, 돈을 떼인 날도 허다했다.

작가가 여러 직업을 갖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소설 쓰는 노동자인 그는 문단의 철저한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다. 서른 살에 소설을 쓰려고 덤벼들었으나 데뷔 후 변변한 청탁을 받지 못했다. 데뷔작인 중편소설의 원고료가 너무 적어 항의했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그때 받았던 상패는 인사동 골목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작가는 2013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작품은 미학적 표현을 참아내고 끝까지 서사를 밀고 나간다. 그 끝에는 기적과 같은 희망이 보인다. 권투로 치자면 상대의 주먹이 어디로 날아올지,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며 기회를 노리는 ‘헝그리 복서’에 가깝다. 고집스럽게 느껴지는 그의 모습에는 현실에 무릎꿇지 않는 절실함이 있다.

▲ 소년공, 1974이종하

“네가 공부를 하면 세상이 너를 힘들게 할 것이다. 그런 팔자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데, 네가 그런 팔자로 태어난 것이다. 힘들고 외로워도 지금 견디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니, 항상 너를 경계해라. 네 마음에서 꿈틀거리는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 네가 살아갈 이 나라가 그런 나라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했던 ‘참는 것이 익숙한 아이’ 종원에게 할아버지가 남긴 말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학교 선생님이 사비를 털어서라도 진학을 권유했지만, 할아버지의 태도는 완고했다.

생존이 곧 승부였다. 실제로 작가는 17살 때 잘 곳이 없어 권투체육관에서 생활했다. 몇번이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시끄러운 세상을 샌드백 삼아 질문을 던진다. 성남의 가방 공장을 전전하면서 뛰어난 가방 기술자가 되기까지 수많은 인간군상이 보인다.

정치적 권력 뿐만 아니라 수많은 악이 우리 삶 곳곳에 있다는 사실이 어떤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아버지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어머니가 글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야 알게된다.

나이가 든 종원은 라오스 학교의 식수 시설을 지원해 주고자 여행을 떠난다. 이곳에서 만난 17세 소녀 ‘누니’는 세명의 동생을 보살피고 아버지의 병원비를 챙겨야 하는 가장이다. 종원은 삶에 대한 의지가 반짝이는 누니의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는 아이의 손을 꼭 잡아준다.

지금도 라오스의 청소년들은 하루 6000원을 벌기 위해 온종일 일한다. 하루를 사는 것이 여전히 버겁고 미싱과 세상은 계속해서 돌고 돌아간다. 소설을 읽는 도중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 흐른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이불 위에 쓰러져 잠이 드는 작가의 삶, 우리와 삶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김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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