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와 무례는 한 끗 차이[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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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다큐멘터리에서 갓 귀농한 젊은 부부를 봤다.
농사가 서툰 남편은 잡초가 무성한 밭에서 손가락만 한 고구마를 캤다.
농사를 망친 것임이 틀림없는데도 부부는 한 줌 되는 고구마를 담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고구마로 지은 밥을 나눠 먹는 따뜻한 식탁, 시시콜콜한 것들에 감탄하고 장난치고 도란도란 대화하는 두 사람에게선 내내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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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내에게 고구마밥을 지어주겠노라 했다. 조그만 고구마를 과도로 서툴게 손질하니 그나마도 돌멩이만 해졌다. 쌀을 씻고 고구마를 넣어 밥을 안치는 남편의 손길은 느릿느릿 정성스러웠고 그사이 뉘엿뉘엿 해가 저물었다.
밥을 다 지은 밥솥을 열자 고구마는 강낭콩처럼 몇 알 심어둔 모양새. 그런 고구마밥도 귀엽다며 부부는 웃음을 터뜨렸다. 산속에 작은 집, 노란 불을 밝힌 식탁에서 두 사람은 고구마밥과 김치가 전부인 저녁을 먹었다.
그 장면을 되게 흐뭇하게 지켜봤다. 부부가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농사도 요리도 저리 서툴러선 안 될 텐데. 집도 허름하고, 형편도 좋지 않아 보이는데 웃기만 해선 안 되지’라는. 앞으로 두 사람은 자주 이런 참견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방송 직후 방송국에 전화해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참견하고 충고하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치로만 기준을 그어 겪어본 만큼만 타인을 짐작하고 판단한다. 와르르 쏟아버리고 뚝 끊어버리는 한바탕 폭우 같은 말들. 특히나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휴먼다큐에서는 그런 말들로부터 출연자를 보호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염려와 무례는 한 끗 차이. 진실로 우러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마음의 유무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나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이 없는 말을 조심하게 된다. 나보다 어린 초심자들을 마주하면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먼저 경험해 봤고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공연히 말을 보태고 싶지만 원치 않는 참견은 삼가려고 애쓴다.
여러 말들을 상대하며 배웠다. 뱉어내고서 시원한 말은 조언이 아니라는 걸. 오히려 이기적이고 편협한 충고일 수 있다. 그런 충고는 무심하고 무례하게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당신이 다를 수도 있다. 함부로 판단하고 참견해서는 안 된다.
나는 부부의 삶을 지켜보면서 행복을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고구마로 지은 밥을 나눠 먹는 따뜻한 식탁, 시시콜콜한 것들에 감탄하고 장난치고 도란도란 대화하는 두 사람에게선 내내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음이 깃든 말에는 웃음소리가 인다. 손을 마주쳐야만 짝짝 소리가 나는 손뼉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활짝 웃어볼 때야 일어나는 깨끗한 웃음소리가. 그러니 먼저 가만히 지켜봐 줄 것. 그러다 마음이 생겨나 부풀어 오른다면 마음을 다해 같이 웃으면 된다. 누군가의 삶에 경솔하게 참견하기보다 묵묵하게 감응할 때 낙관, 정성, 사랑, 행복 그런 소중한 가치들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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