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오영수문학상 수상소감]"‘유명 소설가 돼라’ 아버지 유언 이룬 것 같아"
마지막 말이 축복인 것 같아
아버지 돋보기 쓰고 쓴 글
이야기에 힘 실어줘 감사"



생전에 아버지가 내게 한 마지막 부탁은 틀니를 빼서 닦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단둘이 얼굴을 맞대고 앉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틀니라니. 밀어야 하나 당겨야 하나. 어찌어찌 빼내긴 했는데 손에 쥔 틀니의 촉감이 무척 낯설었습다. 입 안의 온도. 살아 있는 사람의 온기.
한 손에는 틀니를, 남은 한 손으로 아버지 손을 쥔 채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장례 절차나 당부의 말과 죽음 이후의 일들. 나는 아버지가 들으면 좋아할 만한 조카들 근황이나 자랑거리들을 들려주었지요. 내가 가져다 입은 아버지 코트의 멋짐에 대해서도. 모두들 근사하다 칭찬하더라고. 어디서 이리 좋은 옷을 사 입었느냐 묻기에 아버지 옷이라 말해주었다고. 그 말에 아버지는 참 잘했다, 참 좋다, 뭐 더 갖다 입을 거 없나 잘 찾아봐라, 하며 좋아했습니다.
아버지의 그 멋진 코트는, 어머니의 말을 빌자면 십여 년 전 종로의 꽤 권위 있는 양복점에서 맞춘 것으로, 캐시미어 중에서도 최고급 캐시미어 원단으로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모양새가 고급스럽기 그지없으나, 두어 번 걸쳐 보고는 옷장에 고이 모셔두게 된 안타까운 옷이었지요. 아까우니 네가 손 좀 봐서 입고 다닐 테냐 묻기에 덥석 받았고, 딱히 고칠 것도 없이 어깨에 든 뽕만 빼고 입었는데, 제게 퍽 잘 어울렸습니다.
뭐 좋은 거 있나 잘 찾아봐라. 그 말을 반복하다가 제 손을 꼭 쥐고 당부하셨죠. 꼭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야 해. 그 와중에게 간호사나 간병인에게 내 딸이 작가라고 자랑을 했다던 아버지. 유명한 소설가란 또 뭐람 부끄러워했었는데. 오영수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아버지의 당부대로 꼭 유명한 소설가가 된 것 같아서.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당부가 아니라 축복인 것만 같아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며 눈물을 말렸습니다.
저는 소설에서 아버지를 다락방에 가둔 적이 있습니다. 제 소설에서 아버지는 응징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세계를 까발려 아버지를 지우려 애썼습니다. 왜 그토록 날을 세웠을까? 내 세상은 왜 그토록 고통스럽고 상처로 가득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뭐 좋은 거 없나 잘 살펴보라는 아버지 유언에 따라, 패딩 점퍼와 돋보기를 챙겼습니다. 각진 형태의 금테 안경은 취향에 맞지는 않았지만, 도수가 놀랍게도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아버지와 내 시력이 같았다니. 나는 지금 아버지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돋보기를 꺼내 쓸 때마다 죽음에 임박한 아버지와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던 어둑한 병실을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홀로된 어머니 옆에서, 조금씩 단어를 잃어가고 있는 한 여인과, 그 여인이 감각하고 있는 세상을 엿봅니다. 사랑스럽고 다정한 이야기들을 그려봅니다. 그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소설가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