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칼럼] 그림 속의 숲이 가르쳐 주는 것- 김하정(시인)

서정시를 쓰기 위해 낮달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숲속 화랑에 들어간다. 숨 한 번 들이켜면 차분한 빛깔 속에 홀로 서 있어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것 같다. 어제와 같은 사람들 틈에서 새로워진 나를 세워놓고 자연의 빛을 쬐면 황금수레를 탄 해님과 동행하는 듯하다. 가까운 야산에 들어가 자연의 그림들을 감상해 보는 일은 행복 체감도를 높이는 일이 된다. 우듬지에 걸터앉은 각도를 조절할 때는 마치 빛의 화가, 렘브란트가 된 기분이 든다. 그가 채도를 어떻게 정했는지 조금씩 위치를 바꾸어가며 카메라로 인증사진을 찍기도 한다. 기울기에 따라 음영이 바뀌는 것처럼 그림자 짙게 낀 마음의 구석이 없는지 이 숲에서 투영해 본다.
필자는 종종 명화들을 감상하면서 마음속 먹구름을 걷어내기도 한다. 예술이라는 한 장르에서 문학이든 그림이든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에는 그 맥락을 같이한다. 오래전 모 대학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저명한 미술관 관장을 모시고 그림에 대한 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하여 현대 미술의 르네 마그리트까지 두루 살펴보았다.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 서점에서 관련 저서를 구입했다. 미술관에 직접 가서 그림을 감상하면 더할 나위 없는 학습이 되겠지만 차선의 방법으로 책을 사서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보다 시대를 앞서간 어떤 아티스트일지라도 인간이 느끼고 표현하는 삶의 본질은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예술들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우리의 일상 속에 꼭 필요한 생활용품으로 응용한 경우도 있다. 가령, 벨기에 출신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붉은 모델〉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의 작품을 본뜬 것으로 보이는 ‘비브람사’의 ‘five fingers’라는 제품인데 발가락 양말을 연상케 해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빼어난 기능과 착용감으로 이용자들에게 편안한 신발로 각인시켜 주었다.
문학적인 측면에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화가들의 작품들도 무궁무진하다. 필자도 이런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시상을 떠올리곤 한다. 최근 발표한 시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모피 찻잔’이다. 오펜하임의 〈모피 찻잔〉은 1936년에 전시한 작품이다. 가정이나 찻집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컵과 찻잔, 스푼에다 모피를 감쌌다. 이 잔을 들고 차를 마시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흡혈귀처럼 사냥감을 찾아 나서는 욕망의 혀끝이 느껴질까? 아니면 생태계를 보호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교훈으로 다가올까?
문학작품을 통해서 공감력을 키우고 삶의 지혜를 얻는 것이라면 그림 작품을 통해서 얻는 것은 자신만의 충만한 시간을 보내면서 심미안을 기르는 것이다. 그림은 숲을 이루어 숨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듯 눈높이에서 바라보게 한다. 정지한 것처럼 보여도 걸어오면서 내면의 길을 열어간다. 이마의 땀방울들을 바람결이 닦아주며 상처로 덧난 마음을 천연의 빛깔로 감싸주기도 한다. 이렇듯 시간의 벽을 장식한 그림 작품들을 감상하면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저마다 크고 작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아닌가. 숲과 나무가 공존하듯이 문학과 그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리지처럼 우리 앞길의 청사진을 그려가고 있다.
김하정(시인)
Copyright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