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칼럼] 잃어버린 정치 12년, 또 희망 없는 대선

이준희 2025. 5. 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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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는 시대적 분기의 의미를 갖는다.

YS정권은 장구한 군부독재시대의 청산을, DJ정권은 지역주의를 넘어선 완전한 정권교체 시대를 열었다.

평가는 갈리지만 어떻든 정권마다 시대정신에 부응해 한국사회의 구조와 체질, 그리고 인식을 빠르게 바꿔나갔다.

박은 아득한 아버지 시대로 퇴행했고, 문은 대통령직을 파당의 좌장쯤으로 쪼그라뜨렸으며, 윤은 철없는 왕 놀음에 취해 나라를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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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후 지속돼온 퇴행의 정치
이번에도 새 정치 기대 힘든 후보들
국가 미래 보이지 않는 암담한 대선
각각 기호 1번, 2번, 4번을 부여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는 시대적 분기의 의미를 갖는다. YS정권은 장구한 군부독재시대의 청산을, DJ정권은 지역주의를 넘어선 완전한 정권교체 시대를 열었다. 노무현 정권은 강고한 보수기득권 정치에 균열을 냈고, MB정권은 이념에 앞서는 경제적 실용주의를 국정목표로 처음 내걸었다. 평가는 갈리지만 어떻든 정권마다 시대정신에 부응해 한국사회의 구조와 체질, 그리고 인식을 빠르게 바꿔나갔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취는 박정희 정권이 닦은 기반 위에 이후 시기별로 적시의 시도들이 쌓여 이룬 결과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이 이 흐름을 끊었다. 박은 아득한 아버지 시대로 퇴행했고, 문은 대통령직을 파당의 좌장쯤으로 쪼그라뜨렸으며, 윤은 철없는 왕 놀음에 취해 나라를 멈춰 세웠다. 다들 국가지도자로서 시대변화에 무감하고 무책임했던 탓이다. 이 잃어버린 12년의 복구 여부가 이번 대선에 달렸다. 또 5년을 허송하면 한국은 회복 불가능한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이미 도처에서 망조가 완연하다.

국가 복구의 시작은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를 가려 뽑는 일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정치엘리트 선택의 실패는 곧 국가의 실패다. 선택 기준은 앞 시대에 대한 반성과 극복이다. 박근혜 이후 갈수록 정도가 심해진 독선과 불통, 배타적 정파성, 법과 원칙 경시 같은 것들이 그 대상이다. 무엇보다 공정과 상식은 문재인 윤석열이 가장 강조했던 가치였으나 도리어 두 정권을 거치며 완전히 실종됐다.

그래서 또 암담하다. 전 시대의 반성과 극복은커녕 이런 적폐들이 고스란히 온존된 싸움이 된 때문이다. 윤석열 이재명의 막장 공생에 지친 이들은 이의 사법처리, 윤의 임기 종료로 둘이 함께 사라진 새 시대를 그렸다. 그러면 유승민이나 김부겸, 김동연 같은 합리형 인물들을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었을 터였다. 윤석열의 계엄 망동이 이 꿈을 날려 보냈다. 윤이 가로막은 앞날의 길목을 엉뚱한 이들이 차고앉았다.

우선 기막힌 건 김문수다. 계엄 찬성과 탄핵 반대에다, 그 원흉인 윤석열 지키기에 앞장선 사실만으로도 그는 민주주의국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꼿꼿한 인품이나 행정능력 등은 곁가지다. 대통령 선서의 신성한 첫 구절이 헌법준수다. 헌재가 이의 없이 위헌 결론을 내린 후에도 끝내 그걸 옹호한 그가 어떻게 국민 앞에 낯 들고 이 선서를 읽을 수 있나. 또 만에 하나 대통령이 된들 입법 사법이 다 장악당한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이재명은 더 모질고 독해졌다. 윤의 탄압과 ‘억울한’ 사법족쇄를 핑계 삼지만 당내 이견을 적과 내통한 음모 따위로 몰아 냉혹하게 제거함으로써 유일체제를 세운 그 역시 시대와 부합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민주주의 회복” 구호는 그래서 생경하다. 마키아벨리즘이 권력의 목적을 위해 거짓 음모 등 비윤리적 수단을 불사하는 것이라면 그는 영락없는 마키아벨리스트다. 광기에 가까운 사법부 옥죄기는 이재명의 국가 일극시대를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더욱이 한참 여유 있는 판세에서도 여론의 손해를 감수해가며 벌이는 이 칼춤은 차후 한 서린 그의 뒤끝이 얼마나 공포스러울지를 가늠케 한다.

결국 이번 대선은 누가 되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시대적 분기점으로서의 의미는 없다. 굳이 구분하자면 ‘대통령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와, 대통령이 아무것이든 다 할 수 있는 나라’의 선택이다. 뭐든 다 할 수 있는 대통령의 뜻밖의 선처에라도 기댈 여지가 있다면 글쎄, 그것도 희망이라고 해야 하나?

(오해받을 사족이나 이참에 미래세대에 격려나 해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준희 고문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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