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달라진 건설사 수주전…‘경쟁’이 사라졌다
도심 랜드마크 지역선 치열한 수주전…여의도·압구정선 ‘라이벌 매치’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건설사의 재건축 수주전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잠실, 개포 등 알짜 재건축 단지에서조차 시공사 선정 유찰이 반복되며 수의계약이 늘어나고 있다. 높아진 공사비 부담에 불필요한 경쟁을 최소화하고, 조합과의 마찰 등 위험을 줄이기 위한 건설사들의 계책이다. 반면 여의도·압구정 등 이른바 도심 랜드마크 지역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수주전이 펼쳐지는 모습이다.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따르면, 5월15일 기준 올해 시공사 선정 공고를 낸 재건축·재개발 정비 사업지 중 입찰 경쟁(복수 입찰)이 벌어진 사업장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송파구·서초구 등 재건축 대어로 꼽히는 아파트 단지에서조차 시공사 간 경쟁이 사라져 수의계약을 통해 '무혈입성'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우성 1·2·3차 재건축조합은 지난 5월7일 시공사 재입찰을 진행한 결과, GS건설의 단독 응찰로 유찰됐다. 지난 3월에 이어서 또 한번 시공사 선정이 무산되면서 조합은 GS건설과의 수의계약을 검토 중이다. 도시정비법상 경쟁입찰이 2회 이상 유찰될 경우 건설사와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날 재입찰을 진행했던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6·7단지도 현대건설의 단독 응찰로 유찰돼 조합원 투표에 따라 현대건설과 수의계약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 5월9일 입찰을 진행한 서초구 신삼호아파트와 방배15구역 재개발조합도 각각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 포스코이앤씨가 단독 입찰해 시공사를 찾지 못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 인상, 자금경색 등의 어려움으로 건설사들이 수주 가능성이 있는 단지에만 입찰하는 등 선별 수주에 나서는 추세"라며 "여의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경쟁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공사비 30% 이상 올라 '선택적 참전'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경쟁이 실종된 건 치솟는 공사비로 인한 수익성 악화라는 배경이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공사비원가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31.23포인트로 집계됐다. 2020년과 비교했을 때 공사비가 30% 이상 올랐다는 의미다. 수익성도 매년 낮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삼성물산을 제외한 상위 10대 건설사의 매출액 대비 원가율은 3년 연속 증가해 평균 93%로 집계됐다. 공사비 1억원당 벌어들이는 수익이 700만원 남짓에 불과한 셈이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대단지 아파트나 개발 호재가 있는 사업지라도 투입비용 대비 수익성이 낮거나,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입찰을 기피한다. 2023년 분담금 문제로 GS건설과 계약을 해지했던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가 대표적이다. 상계주공5단지는 지난 2월 공사비를 인상해 시공사 재선정에 나섰지만,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가 없어 유찰됐다. 지난 5월13일에도 재입찰공고를 냈으나 아직 입찰 의향을 표명한 건설사는 없다.
상계주공5단지 인근 공인중개사는 "시공사와의 갈등이 한차례 있었던 터라 (지금과 같은 불황에서) 리스크를 안고 참여할 이유가 없다"며 "재건축 동력이 사그라지면서 집값도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한 상태"라고 말했다. 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치열해 '시공사 갈아타기'가 빈번했던 4~5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특정 건설사가 오랜 시간 공들인 조합에는 압묵적으로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관행까지 자리 잡는 분위기다. 두 차례 시공사 입찰이 유찰됐던 잠실우성 1·2·3차의 경우 당초 2차 입찰에서 삼성물산과 GS건설이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삼성물산이 2차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유찰됐다. 조합이 2차 입찰에서 공사비를 3.3㎡당 40만원가량 인상했음에도 경쟁이 붙지 않은 셈이다. 삼성물산은 입찰 의향을 밝혔던 개포주공 6·7단지 재입찰에도 불참을 선언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이 출혈 경쟁 대신 전략적 포기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입찰에 참여한 뒤 선정되지 못하면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는 데다, 홍보·마케팅 비용으로 투입한 수십억원이 한꺼번에 물거품이 된다"며 "GS건설과 현대건설이 오래전부터 해당 지역 수주에 공들여온 만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타 건설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에 도전하는 건설사들도 있다. 핵심 정비 지역을 따내 경쟁력을 입증하면서도, 공사 지연 등으로 인한 리스크를 분담하기 위한 목적이다. 신당10구역은 지난 5월12일 네 차례의 입찰에도 시공사를 찾지 못하자 GS건설·HDC현산 컨소시엄과 수의계약을 추진 중이며, 4월28일에는 DL이앤씨·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장위9구역 시공권을 따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조합 입장에서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컨소시엄보다 단독 수주를 선호하지만, 건설사들이 경쟁을 꺼리는 상황"이라며 "단독 입찰이 이뤄지지 않으니, 컨소시엄과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압구정2구역, 삼성물산·현대건설 '라이벌 매치'
한편, 압구정·여의도·용산 등 서울 내 랜드마크로 꼽히는 대규모 사업지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수주전이 펼쳐지고 있다. 한강변 등 상징적인 위치에 자사 브랜드를 내걸 수 있고, 구역 특성상 책정된 공사비도 높아 수익성도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도시정비사업에 대한 조합원 의지도 강력해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도 낮은 편이다.
올해 서울 주요 지역에서 건설사 간 수주 경쟁이 예상되는 정비 지역은 여의도 대교아파트, 압구정2구역, 용산 정비창 전면 1구역 등이 꼽힌다. 여의도 재건축 단지 중 추진 속도가 가장 빠른 대교아파트는 6월 시공사 입찰을 계획하고 있는데, 8000억원대 사업을 두고 삼성물산과 롯데건설이 물밑 작업에 돌입했다.
6월 입찰을 준비 중인 압구정2구역에서는 업계 1위인 삼성물산과 50년 전 시공사인 현대건설 간 '라이벌 매치'가 성사될 전망이다. 양사는 최근 압구정 재건축 전담 TF 규모를 키우는 등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시공사 선정을 앞둔 용산 정비창 1구역에서는 용산역 일대를 개발한 HDC현산과 포스코이앤씨가 맞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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