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파는 것보다 `필요한 것`에 초점, 저가보다 납득가격"…불황 속 고성장 日유통기업들


'상품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라'는 유통의 상식을 깨고 불황 속에서도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일본의 혁신 유통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한즈만, 오케이, 유니클로 등 일본의 유통혁신 기업들은 '많이 파는 것보다 필요한 것을 찾는 경험', '낮은 가격보다 납득할 수 있는 가격', 외주생산보다 '스스로 만들고 공급하는 구조' 등으로 위기 속에서도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 같는 혁신 사례를 담은 '불황을 이겨낸 일본 혁신 유통기업의 대응사례와 시사점' 연구 보고서를 15일 발표했다.
◇상품, 더 세분화하라…한즈만, 압도적인 상품 다양성 확보
'선택지를 줄여야 고객이 편하다'는 것이 현대 유통의 상식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일본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DIY(조립·제작해 쓸 수 있게 만든 상품) 용품 전문점 '한즈만'은 그 상식을 깨고 2024년(2024년 7월~ 2025년 3월) 매출액과 내점객수가 전년 동기대비 각각 101%, 103% 증가했다.
한즈만은 고객이 원한다면 다 해준다는 고객 제일주의를 실천하는 상품정책을 통해 한 매장에 20만개가 훌쩍 넘는 압도적인 상품 다양성을 확보했다. 목공, 전기, 정원, 배관 등 각 카테고리마다 '세분화에 세분화'를 했다. 예를 들어 나사 종류만 1만 가지에 달한다.
또 일본 프리미엄 식료품 유통업체 '키타노에이스'의 경우, 단일 점포에만 무려 500종 이상의 카레 상품, 100종 이상의 샐러드 드레싱이 진열돼 있다. 일반 슈퍼와 달리 상품 회전율보다 '발견의 즐거움'을 핵심 가치로 삼고 '식문화를 탐험하는 셀렉트 숍'으로 진화하며 특정 소비층의 강력한 충성도를 확보하고 있다.
박경도 한국유통학회 회장(서강대 경영학 교수)은 "한국 유통은 팔리는 상품에 지나치게 집중해 세부적 니즈와 욕구를 놓치는 경우가 있어 아쉽다"면서"고객이 '이건 나를 위한 제품'이라고 느끼는 감동은 가격 경쟁력보다 훨씬 강력한 충성도를 만든다"고 밝혔다.
◇가격이 아니라, 이유를 설명하라…고객 설득한 오케이의 '정직카드'
할인슈퍼마켓 '오케이'에는 '정직카드'가 있다. 값이 올랐다는 사실만 적는 게 아니라 왜 올랐는지, 품질은 유지됐는지, 가격은 언제 다시 조정될 수 있는지까지 매장 내 모든 주요 상품 옆에 설명을 적어 둔 카드다. 오케이는 정직카드 시스템을 통해 고객과 강력한 신뢰를 구축하며 고객만족도 13년 연속 1위를 기록 중이다.
오케이의 2024년 매출(2023년 2월~2024년 3월)은 약 6230억엔으로 전년 동기대비 12.7%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5.9%로 일본 슈퍼마켓 평균 영업이익률인 2~4%를 크게 상회했다.
김창주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교수는"오케이 사례는 불확실한 경제환경 속에서도 소비자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가격정책을 '고객과의 관계'로 바라보고 단순 가격인하보다 '왜 이 가격인지', '품질은 유지가 되는지'에 대한 정보와 정서적 납득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급망, 통째로 통합하라…유니클로·교무슈퍼 '제조 내재화'로 효율성↑
유니클로와 교무슈퍼는 기획-제조-물류-매장-소비자 피드백까지 하나로 연결된 전방위 수직통합형 운영 모델을 통해 소비자 수요에 신속히 대응하며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유니클로는 "우리는 정보로 옷을 짓는 회사다"라는 모토 아래 전 부서를 통합했다. 또 부서간 실시간 데이터 공유를 통해 '팔리는 순간 생산이 시작되는 시스템(정보제조 소매업)' 혁신으로 모회사 2024년(2023년 9월 ~2024년 8월) 매출이 2020년 동기대비 54.5% 늘었다. 영업이익은 23.5%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모회사 패스트리테일링 기준).
교무슈퍼도 제조기능의 통합을 통해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교무슈퍼는 매장에서 판매되는 상품 대부분을 자체 식품제조 계열사를 생산하고 있고 중간 유통마진을 최소화해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품질 통제를 효율화했다. 교무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코베붓산은 이 구조를 통해 두 자릿수 매출 성장세와 높은 영업이익률을 이어가고 있다.
◇'차별화된 경쟁력'…이온리테일, '고객 경험 공간'으로 지속가능한 업태 혁신
급변하는 소비자 트렌드와 온라인 시장의 장에 직면한 일본 유통기업들은 낡은 사업모델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업태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일본 최대 유통기업 '이온리테일'은 어린이 전문매장과 푸트코트·즉석조리식품 강화, 체험형마켓 운영 등을 통해 체류시간을 늘리고 대형마트를 가족형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며 업태 본질을 진화시키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슈퍼마켓 체인인 '라이프'는 셀프스캐닝카트, 전자가격표시기기 등 첨단기술을 매장에 적용한 차세대 슈퍼마켓 4.0 모델을 도입해 디지털·지속가능·체험형 매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슈퍼마켓 1.0은 셀프서비스 방식, 2.0은 인터넷 슈퍼, 3.0은 유기농상품 확대였고, 4.0은 1.0~3.0을 IT 기술로 연결한 것이다.
장근무 대한상의 유통물류진흥원장은 "일본 유통업계는 정반대 전략으로 불황을 기회로 바꿨다"고 강조하면서 "한국 역시 고령화와 소비 침체라는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단기적인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강점을 구축하고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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