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심 없는 제주 사투리 드라마 [달곰한 우리말]

2025. 5. 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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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박보검)과 애순(아이유). 넷플릭스 제공

<폭싹 속았수다>가 세간에 화제다. 혜은이의 '감수광' 이래, 전국적으로 알려진 제주도 사투리가 또다시 출현하였다. 이때의 '폭삭'은 '아주 많이' 정도의 뜻이고 '속다'는 '수고하다'를 뜻하는 말이니 '-앗수다(-았어요)'를 마저 고려하면 결국 '아주 많이 수고했어요'란 표현이 된다.

언뜻 보면 '완전히 속았다'로 읽혀 사기꾼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주인공 애순과 관식의 한결같은 사랑, 그들의 오뚜기 같은 일생을 예쁘고 따뜻하게 그렸다. 그래서 '아주 많이 수고했어요'란 제목이 딱 어울린다. 작가는 제목에 사투리를 써 사고의 반전을 노렸을 터이다. 그러면서도 표기를 '폭싹'으로 살짝 비틀어, 표준어 '폭삭'이 아니라는 단서를 남겼다.

이 드라마에는 제주 출신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 고두심을 비롯해 제주 토박이 화자가 단역으로라도 여럿 출연한 <우리들의 블루스>(2022)와 상당히 다르다. 그럼에도 몇몇 '육지' 출신 배우들에게 '토박이 같다'나 '어디선가 들어본 사투리 같다'는 찬사가 여기저기 댓글로 달린다. 그만큼 드라마계,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제주방언 위상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심지어 사투리를 전혀 안 쓸 것 같은 박보검(관식 역)과 아이유(애순 역)도 꼭 한 장면에서 제주방언을 길게 썼다. 일자리 없이 분가한 후에 얻은 셋방, '만물쎈-타'를 운영하는 집주인에게 월세 납부를 미뤄주십사 부탁하는 장면. 관식이 "이디서(여기서) 뱃일 새로 구허고 있어 갖고예." 라 할 때, 옆에서 애순이 "가게 더 쫌 수시로 봐 드리고예." 하며 거들었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방언도 어렸을 때 배워야 토박이 화자가 된다. 그러니 타지 출신 배우의 사투리는, 특히 억양의 면에서 조금이라도 어색하게 마련이다. 그건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봐야 할 일, 애정만 있으면 이해가 가능하다. 다만 관식과 애순의 대사가 말끝의 '-요'를 '-예'로만 바꾼 표준어라는 비판은 수긍하기 어렵다. 제주방언으로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방언이라고 무작정 다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좋은 사투리 드라마는 해당 지역방언에 관심을 가진 작가와 배우, 감독 등의 최선을 다한 협업 속에서 탄생한다. 이에다가 시청자들의 애정과 너그러움이 드라마 흥행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그 결과로서 <폭싹 속았수다>와 같은 작품성 있는 사투리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더 자주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정승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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