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백악관 첫 퍼스트 레이디의 이스트룸 빨랫줄

18세기 미국 임시 수도 필라델피아(1790~1800)는 지나치게 북부에 치우쳐 있다는 남부 주들의 불만과 밀집한 인구로 인한 위생과 전염병 등 공중 보건 문제에 봉착했다. 새 수도를 정하는 과정 역시 각 주의 이해가 얽혀 7년 넘게 지지부진했다. 그 돌파구를 연 게 북부를 대표한 뉴욕 정치인 알렉산더 해밀턴과 남부 버지니아 출신 토머스 제퍼슨의 이른바 1790년 ‘저녁 만찬 협상’이었다.
연방주의자 해밀턴이 자신의 ‘자금지원법(Funding Act)’을 수용해주는 조건으로 남부 주들의 요구 즉 수도를 ‘남쪽’으로 옮기는 데 동의한 것. 각 주의 독립전쟁 부채를 연방 정부가 떠안음으로써 연방의 재정 장악력을 강화하고자 한 해밀턴의 저 법에 가장 반발한 게, 당시 부채 상당액을 이미 상환한 버지니아였다.
두 거물 정치인의 합의로 1790년의 ‘거주지법(Residence Act)’ 즉 메릴랜드와 버지니아가 기증한 총 100평방마일(259㎢의 정사각형 땅, ‘컬럼비아 특별구’가 탄생하게 됐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위치여서 지역 통합에 이상적인 지점인 데다 포토맥강을 끼고 내륙 및 대양 해운 요충지이기도 했다.
1800년 5월 15일, 필라델피아 의회 마지막 회의가 끝난 직후 존 애덤스 대통령이 수도 이전을 공식 선포했다. 애덤스는 6월 15일까지 한 달간 의회와 모든 연방 기관의 새 수도 이전을 지시했다. 당시 연방 정부 직원은 총 125명이었다. 그들은 공식 문서와 기록물을 내륙 수로를 이용해 새 수도로 옮겼다.
당시 워싱턴DC에는 의사당 등 연방 정부 건물은 거의 완공됐지만, 주택과 편의시설 등 인프라는 사실상 전무했다. 애덤스 대통령 부부도 그해 11월에야 채 공사가 끝나지 않은 백악관 관저로 이사, "음산한 늪 가장자리의 춥고 습하고 외풍마저 심한" 그곳에서 첫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퍼스트레이디 애비게일 애덤스가 12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지금의 이스트롬 실내에 빨랫줄을 걸고 옷을 말렸다는 내용이 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주, 사법부 총공세에 '이재명 면죄법'도 처리... 국힘 "李 독재 정치 신호탄" | 한국일보
- "돈 안 주면 임신 폭로"… 손흥민, 20대 여성 공갈 혐의로 고소 | 한국일보
- ‘동탄 부부 사망사건’ 남편의 납치살해로 드러나.. "계획범죄" | 한국일보
- "우파 연예인들이 선거 돕겠다"... 김흥국 등 10명, 김문수 지지 선언 | 한국일보
- "누구 위해 사나"... 벤츠 타고 호텔 조식 먹는 80세 선우용여 | 한국일보
- '자진 탈당' 버티는 尹... 단일화도 원팀도 멀어지는 국민의힘 | 한국일보
- 천대엽 "재판 책임 추궁 재고" 호소에도... 민주당 "이재명 판결 문제" 공격 | 한국일보
- 이수만 "범법 있었다면 그냥 지나갔겠나"... SM 분쟁 첫 공식 언급 | 한국일보
- 위기의 백종원, "석 달만 기다려 달라"고 한 이유는? | 한국일보
- 기독교 이재명도, 천주교 김문수도 "800만 불심 잡아라"… 너도나도 사찰로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