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무역협상의 판이 뒤집혔다 [아침을 열며]
영국과 중국의 '트럼프 다루기'
농축산물, 가공육 개방 카드로
주력 산업에 유리한 결과 가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상호관세 부과를 선언한 이후, 5월 8일 미국과 영국이 첫 번째 무역 합의를 이끌어냈다. 12일에는 미국과 중국이 상호관세를 90일 동안 115%포인트 인하하고 추가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미중 양국이 서로 관세 폭격과 희토류 수출 통제 등 강력한 보복 조치를 주고받으며 경제 전쟁에 가까운 갈등을 벌였던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놀라운 반전이다.
미국과 영국의 무역협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국은 당초 상호관세 인하는 협상의 여지가 있지만, 개별 품목에 대한 관세는 인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영국은 자동차 10만 대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0%로 크게 낮추었으며,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되는 25% 관세 역시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영국은 미국에 소고기, 에탄올 시장 개방과 항공기 구매 등 상당한 양보를 했지만, 개별 품목에 대한 관세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 휴전에서도 의미 있는 전략적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 인상에 맞서 보복관세와 희토류 수출 통제를 단행하며 강경 대응했다. 그 결과, 미국 첨단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희토류 수출 제한이 큰 협상 카드로 작용했다. 90일 동안의 관세 유예는 양국 모두 무역 단절이 자국 경제에 치명적임을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이는 한국이 앞으로의 대미 협상에서 벤치마킹해야 할 사례이다.
한국은 현재 미국과 7월 8일까지 무역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 안보, 투자 협력, 환율 정책으로 의제를 좁혀 집중 논의 중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 중국 간의 협상 사례를 철저히 분석하여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영국처럼 미국이 요구하는 시장 개방 품목 중 상대적으로 우리 경제에 부담이 적은 품목부터 전략적으로 양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미 수출 주력 품목인 자동차와 철강 분야에서 품목별 관세 인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농축산물과 가공육 시장 개방, 에너지 및 무기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 불균형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중국 사례를 참고하여 미국이 한국에 의존도가 높은 산업 분야를 협상에서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특히 미국의 첨단산업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산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를 활용하여 미국의 관세 정책이 자국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한국이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조선업을 협상에서 전략적 카드로 이용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전쟁을 강행하는 근본적 이유는 내년 11월의 중간선거 때문이다. 선거 승리를 위해 관세 인상으로 제조업 제품 수입을 줄여서 쇠퇴한 제조업 중심지인 러스트 벨트에서 일자리를 늘려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중간선거가 다가올수록 선거에 활용할 경제정책 성과가 필요한 미국으로서는, 갈수록 협상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는 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향후 무역협상에서 가장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를 통한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당근과 협상력 강화를 위한 시간 지연 전술을 적절히 활용해야 할 것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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