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지역언론은 외롭다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2025. 5. 1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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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기자의 시선]

[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 부안독립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전북 부안군 지역사회가 들끓고 있다. 송전탑 사업 때문이다. 해상풍력 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육지로 끌어오는 설비인 '양육점(洋陸點)'이 부안에 들어선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원래는 고창군에 들어설 예정이었다. 고창 주민 반대로 착공은 무산됐다. 대체지로 부안군이 낙점됐다. 한국전력공사와 전북도, 부안군의 의사 결정 결정은 주민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위치 변경 과정에서 주민의견 청취는 '요식행위'에 가까웠다는 의혹도 터져 나왔다.

부안지역 풀뿌리 언론인 '부안독립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부안군과 한전의 '꼼수'를 꾸준히 추적해왔다. 한국전력 입지선정위원회 회의장에 주민 참관이나 언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345kV 서남권 해상풍력 공동접속설비 건설사업] 고압송전탑 부안 10개 읍·면 관통한다는데… 주민 '알권리'는 실종), “부안군은 협조만 했을 뿐 모든 것은 전북도가 결정했다”는 권익현 부안군수의 발언(해상풍력~양육점까지 “우린 협조만, 모든 결정은 전북도가” 권 군수의 책임 회피 발언 '논란'), 백산면 송전탑 사업 설명회가 마을 이장만 모아놓고 치러졌다는 사실(백산면 송전탑 사업설명회…협치는 '실종', 행정은 '폭주')은 모두 부안독립신문 보도를 덕분에 밀실 밖으로 드러났다.

부안군에게 눈엣가시 같은 보도는 계속 이어졌다. 군은 끝내 반격에 나섰다. 부안군은 부안독립신문을 광고 집행 대상에서 배제했다. '공정성 훼손'을 이유로 들었다. 구체적인 광고집행 기준은 공개하지 않는다. 광고비 중단을 일방 통보한 날짜는 3월18일, 부안독립신문은 이 사실을 22일 보도에서 독자들에게 알렸다. 부안독립신문은 그래도 꿋꿋하다. 광고비 중단 통보를 받고도 관련 보도는 이어갔다.

▲ 부안독립신문 '백지 광고란을 채워주세요' 후원글

'제대로 된' 지역언론은 외롭다. 지역에 뿌리내린 토호세력과 기득권, 유력 정치인을 감시·비판하는 보도는 취재 과정이 지난한데 내용은 '재미없다'. 파급력은 이른바 중앙언론 보도 반의반에도 못 미친다. 애초에 대중에게 소구되는 류의 기사가 아니다. 중앙언론이 매일매일 이끌어가는 의제와는 동떨어져 있다. 외로운 보도를 이어갈 수 있는 하나의 이유는 공익을 추구한다는 효능감이 있기 때문이다. 공익을 추구하는 보도에 '공정성 훼손'을 들이밀며 광고를 끊겠다고 하는 것은 비단 자금줄뿐만 아니라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는 그 동력마저 끊어버리겠다는 시도나 다름없다.

지역신문사에 입사해서 처음 지방선거를 치를 때 일이다. 경남지역 출마자들이 선관위에 제출한 신상정보를 전수조사한 적 있다. 며칠동안 문서를 들여다봤다. 그 내용을 가공해서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도했다. 고생한 만큼 그 파급력은 크지 않았다. 내심 못마땅했다. 조회수 좀 올릴만한 동네맛집이라거나, 지역 명소를 소개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왜 쉬운 길을 놔두고 험한 길을 자처할까. 불만스러운 기색을 알아챈 부장은 “귀찮고, 재미없고, 어렵지만 지역사회에 중요한 일을 해나가는 게 지역언론의 일”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그 말을 자주 되뇐다. 지역언론은 대중적으로 '팔리지 않지만' 중요한 내용을 기록한다. 지역사의 초고를 쓴다는 신념이 있다.

현실이 녹록지 않다. 지역 유력 인사들은 웬만한 비판 보도로는 꿈쩍하지 않는다. 지역언론 보도가 별다른 반향이 없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잠깐 타오르다 말겠지'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좀 활활 타오른다 싶으면 언제든지 광고비 등으로 숨통을 조일 수 있다고 여긴다. 요컨대, 지역사회를 감시하는 '재미없는' 기사를 생산하는 지역언론은 자생이 어렵고, 자생이 어려워서 대부분은 세금 지원으로 회사를 유지하는 처지다. 그렇다 보니 지자체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특히 군 단위 언론은 군청 홍보예산에 더 많은 부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지역언론에 세금을 지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공기(公器)'의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뜻이다. 그 역할이 시장 논리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려우니, 세금으로라도 지탱해 주겠다는 사회적 합의다. 그만큼 지역언론이 맡은 임무는 중요하다. 특히 부안독립신문처럼 군 단위의 작은 풀뿌리 언론은 지역의 '구체성'을 기록해야 할 책무를 지닌다. 부안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행정의 실상, 권력의 일방성, 주민의 고통은 풀뿌리 언론이 아니면 누구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다. 수도권 매체는 물론, 광역 일간지조차 놓치는 지역의 사각지대. 그곳에서 벌어지는 정책 결정과 집행의 민낯을 밝혀내는 것은 결국, 이 작은 지역신문의 몫이다.

부안독립신문 같은 '제대로 된' 풀뿌리 언론의 숨통을 조이는 이유는 알아채기 쉽다. 권력의 불통과 폭주는 언론 보도가 사라진 자리를 틈타 '치적'으로 둔갑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진실은 왜곡되고, 피해는 은폐된다. 지역 권력자들은 '지역 밖 언론'을 진정 두려워한다. 자신들이 '입틀막' 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지역언론을 탄압하는 그 지역권력의 방종을 기록하는 일은 이웃 언론이 더 쉽게 할 수 있다. 그 힘이 모이면 지역권력의 불통과 횡포를 전국 이슈로 끌어올려 공론화할 수도 있다. 한 지역의 풀뿌리 언론이 고립되지 않도록 돕는 일이 길게 보면 모두가 사는 길 아닐까. 지역을 아우르는 언론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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