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 다정한 이름

최지연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교수 2025. 5. 14.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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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아침 조깅을 하다 보면 출근길에 선 교생 선생님들을 자주 마주친다. 군데군데 서너 명씩 모여, 단정한 옷차림으로 차를 기다리는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설레고 분주하다. 손에는 밤새 만든 수업 준비물이 들려 있고, 머릿속에는 오늘 만날 학생들과의 대화가 맴돌고 있을 것이다.

서로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나누는 그들은 이미 '선생'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 풋풋한 진심이 참 귀하다. 어쩌면 지금 교실에서 가장 희망찬 존재는 아침 공기 속으로 숨 고르듯 서 있는 그들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교실은 예전처럼 카네이션과 꽃다발이 가득한 스승의 날 분위기와는 다르다고 한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조차 작은 꽃다발도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요즘, 유치원을 비롯한 초·중·고등학교의 교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의 축하와 감사는 조심스러움과 어색함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교탁 앞에 서고, 칠판을 채우며 아이들을 바라본다. 교사의 사기가 꺾이고 있다는 소식 속에서도 수업 준비를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다. "요즘 누가 선생하려 하나요"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누군가는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교실로 들어선다. 교실이 유지되는 이유는 '선생'이라는 이름을 묵묵히 지켜내는 이들 덕분이다.

교실이 특별한 이유는 '지식'만 오가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은 학생보다 먼저 눈치채고, 먼저 기다리고, 먼저 말 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교문 앞에서 아이에게 "밥은 먹었니?" 하고 묻는 한 마디는 그날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말이 된다. 그 말에 담긴 마음은 성적표엔 적히지 않지만, 평생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선생은 그런 말을 수없이 건넨다. 큰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살아주는 사람'이 된다. 누구보다 학생들의 눈치를 보고,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며, 어느 날 문득 아이의 표정에 담긴 어제를 알아차리는 사람. 학생들은 수업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위로했던 그 말, 슬며시 건넨 그 간식, 교문 앞에서 우산 씌워주던 그 손길은 오래도록 잊지 않는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넘어서 존재 자체로 배움을 이끌어낸다. 그 배움은 시험에 나오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다.

스승의 날은 더 이상 화려하지 않다. 카네이션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시대, 어쩌면 스승의 날은 '감사합니다'라는 말보다는 '괜찮으세요?'라는 인사가 더 어울리는 날이 됐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져선 안 되겠지만, 또 그것이 모든 의미를 지운 것도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스승을 떠올리고,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어떤 학생은 졸업한 지 수년이 지나서야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문자를 보낸다. "선생님, 그때 제가 감사했어요." 그러면 또 한 명의 선생은 며칠을 행복하게 지낸다.

모교에 있는 덕분에 은사님들과 한 직장에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 행운과 기쁨도 작년 9월로 끝이 났다. 그 시절 은사님 중 가장 젊으셨던 선생님께서 퇴임하시면서 이제 학교 안에 나의 선생님은 계시지 않는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고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던 연구실이었는데, 지금은 또 다른 젊은 교수의 연구실이 되어 선생님의 흔적은 오간데 없다.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선생님' 하고 부를 수 있는 그 다정한 이름이 있다는 것, 그 든든함과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지금도 교실엔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선생들이 있다. 그 이름이 하루를 버티게 하고 그 존재가 교단에 설 이유가 된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학생도 있듯 모두 떠난 뒤에도 자리를 지키는 선생도 있다. 잊히는 줄 알면서도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 선생이라는 이름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물며 누군가를 지켜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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