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의 순간들, 전주에서

지난주 금요일 전주에 다녀왔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보기 위함이었다. 느낀 바가 정말 많았지만 결국 '좋았다'는 말로만 정리되는 필력이 아쉽기만 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많은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왜 좋았다 뿐인지. 글을 쓰고 말하는 연습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어진 연휴로 많은 영화가 매진돼 급히 예매한 영화였지만 만족도가 높았다. 내가 본 영화는 세 편이었다. '그라운드 제로로부터'는 가자지구 모습, '집에 살던 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는 동물에서 나아가 소수에 대한 이야기, '기계의 나라에서'는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다뤘다.
마지막 날인 데다 비가 와서인지 생각보다 북적북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방문 인원이 적게 느껴졌음에도 굿즈는 거의 매진돼 살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첫 번째 영화 '그라운드 제로로부터'를 보러 갔다.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다.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지 않아 정보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짧은 안내 영상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필자를 전주까지 이끌었다.
단편들로 구성된 영화는 가자지구에 있는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에 녹아 있는 전쟁의 참상이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세 번이나 무너진 건물에 갇힌 사람의 이야기였다. 건물 잔해에 깔린 주인공과 그의 사촌은 몸이 파묻힌 채 거의 얼굴을 맞대고 있었는데, 사촌은 구조 전 사망한 상태였다. 도착한 구조대에게 사촌이 사망했다고 덤덤히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얼마나 많은 죽음을 경험했을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단편도 인상 깊었다. 이불이 없어 한쪽에 놓인 시신 가방을 챙겨 가는 주인공에게 관리자가 가져가면 안 된다고 말하자 어차피 죽으면 한 개는 내 몫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매일 시신 가방에서 잠을 청하고 다시 일어날 주인공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헤아리기 어려웠다. 인물에 이입함으로써 은은하게 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영화가 가진 힘인 듯하다.
영화 '집에 살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는 평소 동물권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오히려 꺼려지는 영화이기도, 봐야 할 영화이기도 했다. 사육 돼지가 사람이 만들어 낸 종이라는 것이 조금 충격이었다. 영화에서 언급된 비질(vigil)은 누군가가 폭력의 증인이 돼 사건을 기억하고 기록·공유하는 활동을 말한다. 동물권 단체에서는 밤새 도살장 옆을 지키며 비윤리적인 모습을 폭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은 왜 도살장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비질이 이뤄지는가였다. 돼지는 평생 사육장 안에만 있다가 도살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상의 빛을 본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 곁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 그 순간뿐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마음에 콕 박혔다. 각 갈등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현명한지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얻은 영화였다.
아쉬운 부분은 폐막식과 폐막작 상영 중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외부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이들에 대한 제재가 없었고, 안내요원이 사라져 누구에게 안내를 받아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이어졌다. 마지막 날임에도 영화제에 대한 숙지가 부족한 활동가도 보였다. 하지만 자원활동가 한 명, 한 명을 호명해 레드카펫을 밟도록 하고 사진이 들어간 사원증을 만든 모습에서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학생이 대부분인 자원활동가의 사기를 고취하고 추억으로 남기는 데 있어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았다.
폐막작 '기계의 나라'는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주노동자 중에는 고학력자가 많다는 사실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기차 시간에 맞추느라 상영시간이 늦어진 영화를 다 보지 못한 점은 가장 속상했다. 되새겨보면 힘들기도 했지만 하루 동안 얻어간 게 많아 보람찼다. 다시금 진로를 두고 흔들리는 마음을 굳게 다질 수 있었달까. 세상에 이렇게 좋은 영화가 많은데 영화제가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영화들이 많은 것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모인 공간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행복했다. 계획 없이 홀연히 떠나는 여행, 최고! 영화제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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