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받지 못하는 ‘미등록자’] 20여년 전부터 권고했지만 ‘묵묵부답’...법무부 “인권침해 아니다” 논란도

김혜진 기자 2025. 5. 1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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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받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하. “임금체불, 인권침해 아냐” 그들이 견뎌야 하는 세상

'미등록 이주노동자 즉시 통보'
공무원, 출입국에 신고 의무

인권위, 2003년부터 예외 촉구
아이·학생 제외…노동자는 빠져
“임금체불 억울”…20여년 외면

법무부 “금전적 채권·채무 불과”
변호사 “생존권 해당…인권 침해”
▲ 법무부가 외국인 취약계층에 대한 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가운데 3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수원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외국인들 민원상담을 위해 사무소로 들어가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국가인권위원회가 20여년 전부터 임금체불을 겪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공무원 통보 의무'상 예외로 둬야 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법무부가 최근 인권위의 법 개정 권고에 "임금체불은 인권 침해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임금체불·산재 겪더라도 신고 의무

14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출입국관리법상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의 공무원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보는 즉시 출입국에 알려야 하는 통보 의무를 진다. 미등록 신분 자체가 법에 위반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어떤 부당한 상황을 겪더라도 구제 요청을 억제당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인권위는 지난 2003년 이 조항을 일정 수준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인권위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하거나 폐지할 필요가 있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출국을 감수하고 권리구제를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 인권위가 지난 2007년, 2010년 등에도 법 개정을 각각 권고했는데도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국회가 지난 2012년 사안을 접하고 공무원의 통보 의무 개정을 추진했다. 다만 국회는 아동·학생·환자 등을 통보 의무상 예외로 둔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피해구제가 우선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라는 추상적인 내용을 법에 담았다. 임금체불 등을 겪어 노동부에 구제를 요청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사례는 적용되지 않았다.

▲임금체불, 인권 침해 아니다?

인권위는 지난해 베트남 국적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서 임금체불 권리구제 관련 진정을 받아 조사한 뒤 법무부에 법 개정을 또다시 권고했다. 인권위는 진정 접수자가 미등록 신분이었기에 현재 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고도 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임금체불은 금전적 채권·채무에 불과하다"며 인권위의 권고를 거부했다. 법무부는 "인권 침해 또는 범죄피해자 구제가 필요한 정도에 이르지 못한다고 봐야 하므로 권고 내용은 통보 의무 제도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임금체불을 겪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단속됐을 때 강제퇴거 집행을 유보하며 문제 해결을 보장하고 있다"고도 했다.

법조계에선 법무부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영관(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임금체불 문제는 생존권에 해당하는 문제로 당연히 인권 침해로 봐야 한다"며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을 겪을 때 타격이 더 큰데, 형사상 채권·채무 문제로 봐야 한다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권영실(법무법인 더웨이) 변호사는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당연히 인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겠느냐"며 "법무부가 상식선에 부합한 해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호(법무법인 함백) 변호사도 "형식적으로 법을 해석한 결과"라며 "당장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으면 가정 자체가 파괴된다"고 했다.

지난달 29~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의 대한민국 국가보고서 심의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었다. 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권리구제 제도 개선을 지적했다.

법무부는 인권위에 의견 회신 이후 추가적인 검토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인권위 권고가 와서 회신했고 이후 법적 개정을 위해 별도로 논의하고 있는 건 없다"고 했다.

▶관련기사 : [구제받지 못하는 '미등록자'] 국제사회서도 '미등록자 권리 구제 제도' 낙제점…"실질적 권리보장 필요"

/최인규·김혜진·고륜형·추정현 기자 choiinkou@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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