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닮을 일? 이재명·김문수 당적만 다른 '판박이' 일생
이, 소년공 검정고시로 대학 입학
김, 고3때 3선개헌 반대 제적 이력
대선 재도전 이력까지 닮아 눈길

제21대 대선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출신과 성장 배경, 정치생활 등에서 닮은 꼴 정치인이다.
역대 주요 대선 후보들이 상반된 이력을 가졌던 것에 비해 상당 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 이번 대선 결과의 또다른 관심거리다.
이 후보는 경북 안동 화전민 가정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김 후보는 경북 영천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이른바 '흙수저' 출신들이다.
학창시절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이 후보는 1977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생활이 어려워 중학교 대신 수공업 목걸이를 만드는 영세공장에서 소년공 생활을 했다.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1978년 고입 검정고시와 1980년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 법대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김 후보는 고등학교 3학년 때 3선개헌 반대 시위를 하다 제적됐다가 복적됐다. 고학으로 1970년에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했다.
두 후보 모두 대학 생활은 다소 달랐지만 대학 졸업 이후에는 노동운동의 길을 걸었다.
이 후보는 1986년 사법고시(연수원 18기)에 합격한 이후 노동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성남시민모임'을 창립, 시민운동도 시작했다. 2004년 성남에 있던 종합병원 두 곳이 폐업하자 성남시민들과 성남 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벌였다.
김 후보는 1970∼1980년대를 이끈 反유신·노동운동 1세대 노동운동의 전설로 통한다. 대학 입학 후 김근태와 함께 서울 구로구 구로공단에 노동자로 위장취업하여 위장 취업노동자로 활동했다. 1980년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시절과 1986년 인천 5·3 민주항쟁 과정에서 두 차례 구속됐다.
정치와 행정도 비슷한 코스를 밟았다.
이 후보는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 공천을 받아 2006년 첫 성남시장과 2008년 성남 분당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2010년과 2014년 재선 성남시장과 2018년 경기지사에 당선됐다.
지난 대선 패배 후 인천 계양을 재보선과 지난 총선서 당선되면서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김 후보는 이재오·장기표 전 의원 등과 1990년 창당한 민중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1994년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총재의 권유로 전격 입당, 15대부터 17대까지 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부천 소사에서 내리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6년에 이어 2010년 경기지사에 당선된 재선 출신 경기지사다.
대권 도전 과정도 두 후보 모두 순탄치 않았다.
이 후보는 첫 대선 도전인 19대 대선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안희정 후보에 밀려 3위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지난 2021년 7월 다시 대선 도전을 선언, 같은 해 10월 이낙연 후보를 누르고 20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됐다.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47.83%를 득표하면서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0.73%p 격차로 패배했지만 윤 전 대통령 탄핵으로 3년여 만에 대선 재선 도전의 기회를 얻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당하는 등 정치생명에 최대의 위기에 처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이 대선 이후로 판결을 미뤘고, 다른 의혹 재판도 연기되면서 사법리스크도 일단 피했다.
김 후보는 2012년 18대 대선 때 새누리당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밀렸다.
'12·3 비상계엄' 정국을 거치며 보수 진영의 대권 주자로 떠올랐고, 지난 5월3일 당내 대선 경선에서 한동훈 후보를 누르고 대선 후보에 당선됐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후보교체에 따라 후보 자격을 박탈됐지만 후보 교체를 위한 당원 여론조사에서 부결돼 기사회생했다.
김재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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