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 굿바이, 영록서점- 김정민(사회부장)

‘헌책방은 일반 서점보다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종이의 역사가 있고, 출판사와 작가의 시행착오가 있으며, 인쇄술의 변화가 있고, 사람들의 생활이 있으며, 조상의 지혜와 장난기가 있고, 시대의 색과 거기서 불거져나온 선(線)이 있으며, 그리하여 끝없는 낭만이 있다.’ 가쿠타 미츠요의 〈아주 오래된 서점〉 중에서.
▼코가 간지러워지는 묵은 종이 냄새, 천장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쌓인 서적, 사람 한 명이 게걸음으로 간신히 지나가는 좁은 통로….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헌책방의 풍경이다. 1987년 문을 연 마산의 대표 헌책방인 영록서점이 폐업했다. 2017년 박희찬 대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잠시 문을 닫았다가 건물주가 서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인수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더는 운영이 어려워졌다.
▼영록서점뿐 아니라 오랜 명맥을 이어왔던 극장, 지역 책방, 동네목욕탕, 문방구, 이발소, 양장점들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통계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2023년 폐업 신고한 자영업자는 98만6400여명이다. 한 해 문을 닫은 업장이 무려 100만개에 육박한다. 경남에서만 5만6572명이 폐업했다. 주된 이유는 수익성 악화와 매출 부진이지만, 코로나19 여파와 그에 따른 디지털 수요, 변화된 소비 패턴, 고물가와 경기 침체, 최저임금 인상, 인구 감소, 거대 자본 등 복합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한 시대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던 상징물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던 책방과 레코드점도, 동네 사랑방이던 양장점도, 온 동네 사람들의 속살을 마주하던 목욕탕도 이제는 찾기가 힘들어졌다. 영원할 것 같던 번화가의 상권은 영락(零落)했지만, 새로 지어진 반듯한 거리에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문화를 가꿔 나가고 있다.
김정민(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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