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둑에 서서 6월을 기다리며 [똑똑! 한국사회]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올해는 봄이 늦게 왔다.
올해 윤달이 있어서 봄이 추울 수밖에 없다는 말도 있었지만 어쨌건 늦게까지 추웠다. 봄에 일찍 피는 벚꽃과 진달래꽃도 여느 해보다 늦게 피었고 봄이 무르익으면 피는 모란이 더위가 찾아오려는 참인 이제서야 피었다. 이미 5월 중순에 접어들었는데도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날이 많다.
해마다 설 명절이 지나면 우리는 이것저것 씨앗을 붓는다. 다 기른 모종을 밭에 옮겨 심어 기르는 때부터는 자연의 날씨에 맡기지만 모종은 비닐 터널 안에 온풍기를 틀어 따뜻하게 보온을 하여 기른다. 우리 사는 곳은 추워서 다른 지역보다 봄과 여름은 한발짝씩 늦게 찾아오고 가을과 겨울은 한발짝 먼저 찾아온다. 작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따뜻한 기간이 다른 지역보다 짧다. 온상을 만들어 모종을 기르면 제때 밭에 모종을 내다 심을 수 있고 제때 수확을 할 수 있다. 봄배추나 양배추 등은 봄에 심어서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해야 하는데 모종으로 길러 심지 않으면 장마가 와도 다 자라지 못한 채 망가진다. 고추도 일찍 모종으로 길러 밭에 내다 심지 않으면 붉어지는 시기가 늦어 몇번 고추를 따보지도 못하고 서리를 맞는다.
제일 먼저 밭으로 나간 작물은 잎채소들이다. 추위에 강한 상추, 봄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파 등은 제일 먼저 밭에 내다 심었다. 그 뒤 밭으로 나간 작물은 열매채소들이다. 토마토를 제일 먼저 심고 뒤이어 고추, 오이, 가지, 옥수수, 채두(껍질콩), 호박 등의 모종을 내다 심었다. 열매채소들은 서리가 더 이상 내리지 않는 ‘만상일’이 지나고 심는다. 영하까지 내려가지 않고 섭씨 2도로만 내려가도 서리가 내려 기껏 밭에 심은 작물이 얼어 죽는다. 우리 이웃 마을에 사는 연세 있으신 한분이 올해는 고추를 조금 일찍 심었다. 만상일이 며칠 남지 않아서 마음을 놓고 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며칠 뒤에 기온이 뚝 떨어져 서리가 내렸고 그분이 심은 고추는 다 얼어 죽었다. 그분의 밭이 마침 길가에 있었는지 그 뒤 동네 사람을 만나면 입을 모아 그 이야기를 했다. 그분은 결국 고추 모종을 사서 다시 심었다고 한다. 작물은 절대 시기를 거슬러 심으면 안 된다.
모든 잎채소를 다 일찍 심지는 않는다. 더운 지방에서 온 모닝글로리(공심채)는 늦게 심어야 이른 봄추위에 위축되지 않고 잘 자란다. 그 공심채 모종은 며칠 전에 밭에 내다 심었다. 벼는 면적이 넓지도 않고 우리 농사 수입에 크게 관여하지도 않지만 식량이기에 중요한 작물이다. 봄이 되고 날이 풀리면서부터 남편은 틈틈이 논둑을 손질했다. 논둑은 겨울을 나면 여기저기 구멍이 생기고 허물어진다. 겨울 동안 땅이 얼었다 녹았다 하고 두더지나 쥐가 뚫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논을 갈고 논둑을 다 손질하고 나면 저수지에서 물이 내려올 때가 된다. 논에 물을 찰랑찰랑하게 받아서 논을 다시 한번 갈고 써레질을 한다. 트랙터 뒷부분에 긴 쇠갈퀴 같은 작업기를 매달아 논 전체를 누비면 논바닥이 평평해진다. 논에 가득 채운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써레질하고 사흘쯤 지나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모내기를 할 수 있다. 이번 주말에 모를 심기로 했다. 다음주에 마지막으로 고구마를 심으면 심는 일은 일단 끝난다.

그러고 나면 여름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김을 매고 가꾸는 계절로 들어선다. 봄에 밭을 만들고 심는 일만큼이나 분주한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 여름의 초입인 6월3일에 대선을 치른다. 지난겨울 추위가 혹독한 것만큼이나 우리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겨울을 광장에서 보냈다. 심지어는 계절은 봄이 왔는데도 광장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마음의 봄은 오지 않았다. 대선을 치르고 나면 이 세상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일상을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보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허리와 얼굴을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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