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을 위한 민주주의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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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류라는 서사가 우리를 조건 지어왔다.”
브라질 원주민 지도자 아이우통 크레나키가 그의 책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에서 한 말이다. 그는 지금 인류가 자연과 다르다고 생각하게 됐지만, 예전부터 “모든 것이 자연이다. 온 우주가 자연이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작금의 기후위기는 ‘인간의 위기’가 아니라 ‘관계의 위기’다. 크레나키가 속한 쿠이쿠루족은 열대의 숲에서 수천년 동안 강을 ‘할아버지’로, 숲을 ‘형제’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서구 문명이 들여온 ‘인류’ 개념은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내몰았다. 자연은 남용하고 착취하고 파괴해도 되는 것이 되었다.
기후위기를 자본주의의 탐욕에서 찾는 분석은 익숙하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증기 원동기가 자본가의 사회를 낳았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에 비해 크레나키는 더 근본적인 층위, 즉, 우리 몸에 새겨진 ‘인간중심주의’라는 지문을 응시하자고 한다. 서구 문명은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인류를 자연의 관리자 내지는 정복자로 임명했다. 이 같은 관점은 단순히 자연에 대한 착취를 넘어 생명을 ‘유용성’으로 평가하는 사고를 낳았다. 공장식 축산을 통해 생명은 대량 생산·소비되는 일회용품이 되어 버렸다. 도시인이 소, 돼지, 닭을 마주하는 유일한 순간은 슈퍼마켓 진열대에 놓인 그들의 사체를 보는 때다. 문제는 자원 사용과 착취 그 자체보다는 관계의 왜곡이다.
기후위기에서 탈출하려면 ‘자연 착취’라는 연료로 가동하는 산업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산자이자 소비자이자 체제의 공모자인 이상 우리의 세계관을 바꾸지 않으면 쉽지 않다. 어떻게 자연과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을까?
선거는 후보들의 싸움이자, 세계관의 경쟁이다. 나와 다른 사람(여성, 청년, 노인, 이주노동자 등)과 동물과 숲과 하늘과 바다와 어떠한 관계를 설정할지 보여주는 청사진과 이를 향한 경로의 경쟁이다.
네덜란드에서는 2002년 10월 ‘동물의 대변자’로 자임하며 결성된 동물당(PvdD)이 돌풍을 일으켰다. 2023년 총선거에서 하원 150석, 상원 75석 가운데 각각 3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유럽연합 의회에도 진출했다. 동물당은 인간과 동물을 포함해 ‘가장 약한 존재의 권리’를 주장한다. 헌법에 동물 권리를 명문화하고 공장식 축산을 금지하자고 주장하는 등 동물의 이해에 따라 활동할 뿐 아니라 기본소득과 주30시간 근무제 도입 등을 외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도 뛴다.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 동물 권리를 전면에 내세운 정당이 활동하고 있다.
2022년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근대 사회가 인간(주체)과 비인간(객체)을 엄격히 분리해 왔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이 맞물려 발생하는 환경 위기와 같은 ‘혼종’의 문제가 정치적 논의에서 배제되었다.
그가 제안한 것은 ‘사물의 의회’다. 인간과 비인간이 공동으로 의제를 협의하는 기구다. 이 기구에서는 과학자와 활동가, 시민이 강, 산, 동물 등 비인간을 대신해 발언한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비인간이 되어보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환경을 보고 동물과 협치할 때, 비로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생태계 전체로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발상이다.
6월3일 대통령 선거가 보름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운동 초반이라 더 지켜봐야겠지만, 동물권과 기후 대응은 여전히 변방의 의제인 듯하다. 생명체의 권리를 적시한 헌법 개정,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고 선언하는 민법 개정, 동물을 사고파는 펫숍 금지 같은 비인간의 요구 사항이 올라와 있다. 지체되고 있는 화력발전소의 운영 중단, 탄소중립 로드맵 강화 같은 것들도 시급하다. 더불어 대통령실이나 관계 부처에 동물과 자연의 이해를 대리하는 대변인을 한 명씩 두면 좋겠다. 이것들이야말로 동물과 자연이 요구하는 것들이다. 정치는 더 이상 인간만의 영역이 아니다. 민주주의도 더는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연과 협의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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