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외신 다이제스트] 쿠르드족 `47년 투쟁`의 끝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이 조직을 해체하고 튀르키예 정부를 상대로 전개했던 무력투쟁을 종식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1978년 쿠르드족 독립국가 수립을 목표로 PKK가 창설된 지 47년 만이다. 중동 전역, 나아가 유럽과 미국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PKK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성명에서 "PKK의 투쟁은 우리 민족에 대한 말살 정책을 무너뜨리고, 쿠르드족 문제를 민주적 정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올려놓았다"며 "PKK의 조직을 해체하고 무력투쟁을 끝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PKK 해체 과정을 설립자인 압둘라 외잘란(75)이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약 3000만명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족은 튀르키예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튀르키예의 경우 전체 인구 8700여만명 가운데 약 20%가 쿠르드족이다.
쿠르드족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 오스만 제국의 영토 분할을 다룬 세브르 조약으로 독립국가로 가는 길을 열었지만 조약이 곧 폐기되면서 '국가 없는 최대 민족'으로 남게 됐다. 그후 쿠르드족은 거주하고 있는 각국 정부로부터 핍박을 받아오고 있다. 이 억압의 역사 속에서 1978년,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PKK가 창설됐다. PKK는 쿠르드족이 다수인 튀르키예 동남부의 독립국가 수립 또는 자치권을 요구하며 무장투쟁을 벌여왔다.
이제 무력투쟁이 일정한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면서 조직 해체를 선언했다. 하지만 실상은 무력투쟁의 전략적 한계가 분명해졌다는 데 있다.
튀르키예 정부의 강경 진압과 함께, 미국과 유럽연합(EU)까지 PKK를 테러조직으로 분류하면서 외교적 고립이 심화되었다. 여기에 내부 분열, 민간 지지의 약화, 그리고 PKK의 주요 근거지인 시리아의 정세 급변은 조직 유지의 동력마저 흔들었다. 시리아 과도정부는 자국 내 튀르키예군 주둔 등에 합의하며 튀르키예 정부와 밀착하고 있다. 또 튀르키예가 적대시하는 PKK 계열 반군 시리아민주군(SDF)을 정부군에 흡수하기로 하고, 이들을 튀르키예 접경지에서 먼 곳으로 재배치하는 중이다.
이에 조직 설립자 외잘란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99년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감형되어 수감 상태다. 그는 올해 2월 "모든 단체는 무기를 내려놓고 PKK는 스스로 해산해야 한다"고 촉구, 결정적인 방향 전환 신호를 보냈다. 한 달 뒤인 3월 PKK는 튀르키예 정부와의 휴전을 전격 선언했고, 이제 조직 해체를 공식화했다. 이는 튀르키예 범여권과 친쿠르드 야당 간 오랫동안 이어져 온 비공식 협상 결과로 해석된다.
하지만 PKK 해체가 쿠르드족 문제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PKK는 물러났지만, 그들이 제기했던 민족적 정체성, 독립과 자결권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른 무장세력의 부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쿠르드족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정치적으로 포용하는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다. 전쟁이 아닌 포용이야말로 이 뿌리 깊은 분쟁을 끝낼 유일한 열쇠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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