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는 ‘안전 없는 에너지 전략’ 폐기해야 [왜냐면]


이정윤 |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폭염과 산불, 한파와 집중호우, 태풍과 해수면 상승. 이 모든 것이 이제는 예외적 재난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후위기가 기존 에너지 인프라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라며, 특히 냉각수 등 외부 자연조건에 의존하는 원전의 구조적 취약성에 주목했다. 실제로 2022년 여름, 프랑스는 기록적 고온과 냉각수 부족으로 원전 4기의 가동을 중단했고, 북유럽 국가들 역시 강의 수온 상승으로 출력 제한 조치를 반복했다.
한국 역시 해수 온도 상승, 지진대 인접, 급격한 강우 변화 등 복합 재난 요인에 노출되어 있지만, 원전 정책의 중심은 ‘안전’이 아니라 ‘공급’과 ‘확대’에 치우쳐 있다. 지난해 기준, 총 26기의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력이 전체 전력 생산의 31%를 넘는다. 이는 세계 평균(9.2%)의 세배가 넘는 수치로, 프랑스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토 면적 대비 원전 밀집도는 세계 1위, 인구 밀도 대비 원전 수 또한 최상위권이다.
반면 우리의 제도적 안전 기반은 심각하게 취약하다. 첫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독립기관’이라지만, 실제로는 예산과 인사에서 정부에 종속해 있다. 규제 기능보다 사업자 입장을 반영하는 ‘안전 관리’ 역할에 머물고 있으며, 사무처 중심으로 관료화되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강조하는 전문성과 독립성 측면에서도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둘째, 지진·홍수·해수온난화·테러 등 다양한 재난 시나리오에 대한 정량적 영향 평가나 중대 사고 시뮬레이션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으며, 대피 계획과 훈련도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히 밀집된 인구 밀도를 감안할 때, 하나의 사고가 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수 있음에도 이 위험성을 공론장에서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셋째, 원전 관련 정보는 대부분 비공개로 관리하며, 시민의 감시와 참여는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 원전은 공공 인프라임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알 권리와 참여권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정책 전반에 걸쳐 구조적 개편에 나섰다. 27기를 영구 폐쇄하고 현재 14기가 가동 중이다. 한 기당 2조원에 달하는 안전 설비 투자를 거쳐, 신설한 까다로운 규제 기준을 충족하고 규제기관(NRA)의 심사를 통과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재가동을 허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주민 동의와 지역 협의 절차가 포함되어 있다. 반면 한국은 고리 2호기 수명 연장에 투입한 예산이 3천억원에 불과하며, 그나마 절반은 안전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주민 상생자금이었다. 형식적인 수명 연장 모습은 일본의 재가동 노력과 대조된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사고가 보여주었듯이, 원전 안전은 ‘사고가 나지 않았으므로 안전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으므로 철저히 대비해야만 안전한 것’이다. 특히 원전 사고는 단 한번의 사고로 국가 전체가 회복이 불가능한 사회적 재앙을 초래한다.
최근 일부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이유로 원전 확대를 주장한다. 이는 에너지 효율 개선과 수요 관리 전략보다 전력 수요 증가에 비중을 둔 논리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이 결여된 발전 확대는 기후위기를 더욱 가속할 뿐이다.
정치권에서는 ‘안전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선언으로서의 안전은 실제 구조로 전환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치적 수사나 기술적 낙관주의가 아니라, 관료화를 탈피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혁신적인 제도적 개혁과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규제기관의 전문성 확보와 함께 인사와 예산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투명한 안전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정책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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