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도입 1년 만에 '규제 급선회'…자본압박에 보험사 '휘청'
[편집자주] 새 회계제도 도입 3년차에도 후폭풍이 거세다. 이익을 많이 내기 위해 건강보험 상품에 '올인'하면서 다양성이 붕괴되고 보험산업이 왜곡되고 있다. 버티지 못한 보험사는 사라진다. 게다가 예측 불가한 금융당국의 규제는 시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키우고 있다.

새로운 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금융당국의 급격한 규제 변화로 보험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하락과 자본 확충 부담이 겹치면서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높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IFRS17은 원칙 중심 회계기준으로 계리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 없이 보험사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진다. 보험사들은 자체적으로 가정을 세워 재무제표에 반영해왔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IFRS17 도입 1년 만인 지난해 보험사들이 이를 활용해 실적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있다고 판단해 계리 가정을 변경하고 그 해 연말 결산부터 즉시 반영토록 했다.
문제는 이러한 급작스러운 규제 전환이 자산건전성 지표에 직격탄이 됐다는 점이다. 이미 시장금리 하락으로 지급여력비율(K-ICS) 하락 요인이 누적된 가운데, 계리 가정까지 보수적으로 바뀌며 보험사의 부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킥스는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눠 계산하는데 부채가 늘어나면 순자산이 줄어 가용자본은 감소하고 보험 리스크가 커져 요구자본은 증가해 지급여력비율이 이중으로 하락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보험사들은 중소형·대형을 막론하고 지난해에만 8조7000억 원 규모의 자본성 증권을 발행했다. 연간 이자비용만도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 조달 비용 증가는 결국 보험료 인상 등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다. 자본 확충 압박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주요 보험사들은 연초부터 수천억 원대의 자본성 증권 발행 계획을 줄줄이 공시하며 킥스 유지를 위해 돈을 쏟아붓고 있다.
중소형사의 타격은 더욱 크다.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한 데다 계리 가정 변경으로 부채가 급증하면서 시장 신뢰 저하까지 겹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금융당국은 자본의 질까지 규제하겠다고 나서면서 기존 자본 확충 수단인 후순위채, 신종자본증권 활용도 쉽지 않아졌다.
업계는 당국의 갑작스러운 규제 변화에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2021년 IFRS17 도입에 맞춰 상품 포트폴리오와 시스템을 정비하며 대대적인 준비를 해왔지만, 도입도 2년이 늦어지고 이후에도 규제가 계속 바뀌면서 전략 수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회비용과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IFRS17 도입 2년 전부터 계리 가정 가이드라인을 당국에 요청했지만 회계 취지에 맞게 자율성을 인정하겠다는 입장에서 갑자기 급선회했다는 하소연도 이어진다.
일각에서는 외국계 보험사들의 '엑소더스'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푸르덴셜생명, ING생명, PCA생명 등 주요 외국계 보험사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외국계 보험사들도 규제 리스크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매각을 고려 중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규제 방향성이 자주 바뀌는 탓에 장기적 자금조달이나 경영전략을 수립하기 어렵다"며 "자본력이 약한 중소형 보험사는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배규민 기자 bk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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