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9장] 영광·함평·나주·무안 동학농민군(144회)

정희윤 기자 2025. 5. 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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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榜)은 주민에게 부당하게 징수한 세미를 균등하게 나눠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한 기왕에 천명한 창의의 행동강령 격문도 나붙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사람을 죽이거나 재물을 손상하지 말 것, 효의 근본을 새길 것,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것, 일본 오랑캐의 발길을 차단하여 성스러운 강토를 내주지 말 것, 장차 군사를 거느리고 입경하여 권귀(權貴)들을 몰아내거나 죽일 것 등을 선포하였다.

"왜의 군사가 들어온다고?"

백성들은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담벼락에 붙어있는 왜인 경계의 방문(榜文)을 보면서도 실감을 하지 못하였다.

"맬겁시 나온 말은 아닐 것이시. 동도대장은 신출귀몰하고, 선지자적 예언을 하는 사람잉깨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닐성불러."

"암만, 그런다면 그런다고 봐야제. 법성진과 낙월도에는 벌써 왜인이 꽤 들어왔잖는가. 그들의 신변을 보호한다면서 군사도 파건한다는 말이 있다 마시."

세곡창 앞에는 고을 사람들이 빈 자루를 들고 모여들어 자루 가득 세미를 담아가고 있었다. 이때 법성진 항의 조운선에 있던 세곡도 양판재의 지휘 아래 세곡창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세곡창은 더욱 풍성해졌고,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어째 좀 껄쩍지근하긴 한디, 내가 낸 것 내가 받아강개 염려스럽진 않네야.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세금을 냈는가. 집단 호구가 되어버린 호구세, 토지세, 가옥세, 취득세, 인두세, 군역세…듣도 보도 못하는 품목들 얼마나 많은지 말도 못하제. 이런 세금을 징수해갔어도 백성들을 위해 돈이 쓰인 것을 한번도 못보았응깨 억울하기만 했제, 한디 시방 이렇게 돌려받응개 세상이 쪼까 공평해 보이네. 거둬갔으면 거둬간 반에 반만큼이라도 백성을 위해 써야하는디, 중앙이나 지방 관속들 배때지 채우는데 써버링깨 억울했당깨. 엿같은 세상이라고 세상을 원망했제. 동학군사들이 고맙네야. 그리고 시방 세미를 가져가도 마음이 두렵거나 죄책감이 들들 않고만."

동학농민군의 무장 투쟁은 어느새 주민 구호의 일역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지역의 민란이 아니라 지방자치 정부의 구실도 하는 것이다. 거기에 반봉건, 반외세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운동이 변모해가고 있었다.

홍계훈 양호초토사가 이러한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군사를 증원하였다.

"개노무 새끼들, 반외세, 반봉건? 말이 좋다 그거지,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더냐? 그 자들 말 뒤에는 단연코 왕권에 대한 도전이 숨어있다. 또한 외세에 도전한다? 입경하여 권귀들을 몰아내거나 잡아죽인다? 점입가경이로다. 이것들이 창자가 배 밖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면 이런 오만방자한 겁박이 나올 수 없지. 두고 보자. 이번에야말로 섯바닥 쏘옥 빠지게 조져버릴 것이다."

홍계훈은 영광 읍내로 경군과 전라감영군을 들여보내 인근 산에 잠복시켰다. 1차 동짓재 전투 때 피를 본 것을 생각하고, 그는 이를 갈며 새로 부임한 전라 감영장(監營將) 이광양과 초군장(哨軍將) 이재섭에게 지시하여 별초군 250명과 보부상으로 편성된 군사를 이끌도록 조치했다. 이것도 부족했던지 총제영 중군(總制營中軍) 황헌주가 이끌고 온 장위영병 300명과 강화병(江華兵) 500명까지 영광과 법성포 일대 산에 배치했다. 두 지역을 점거한 동학농민군을 이참에 아예 아작을 내버릴 작정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조정은 전라도에서 민심이 묘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보고받고 왕의 윤음(綸音)을 내렸다. 탐학 지방관의 징계를 약속하고, 민폐가 심한 지역은 지방관을 교체하는 따위 조치를 과감히 단행하겠다고 선포하였다. 그러면서 동학의 위협에 못이겨 가담한 사람은 벌을 주지 않겠다는 선무작업도 벌였다. 완전 갈라치기 수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선무책이 통용될 리 없었다. 그동안 신뢰를 잃었을 뿐아니라 난을 평정하면 곧바로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