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엘리트의 몰락 [유레카]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는 1976년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한 자동차인 ‘현대 포니’의 디자인을 본떴다. 포니 생산의 토대를 마련한 건 김재관 상공부 차관보다. 독일 뮌헨공대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였던 그는 “우리 기술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시 현대차 정세영 사장과 정주영 회장을 설득했다.
한국 경제가 고속 성장했던 1960∼1980년대엔 유명한 경제 관료가 많았다. 대체로 해방 전에 태어나 일본·미국 등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40대에 장관에 올라 정책을 이끌었다.
한국은행 출신으로 한국일보를 창간하기도 했던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964∼1967년 재임)은 새벽부터 전화로 직원들을 달달 볶고, 물가 잡으려 현장을 직접 뛰었다. 현대 포니 자동차를 배에 실어 당시 무역거래가 불법이었던 중국 시장에 내다 팔고 중국산 고추를 들여와 국내 고추 파동을 잠재운 건, ‘서강학파(서강대 교수 출신 경제 관료)의 대부’였던 남덕우 대통령 경제특보였다.
최근 부처 쪼개기 논의를 부른 ‘기획재정부 왕 노릇’의 시작도 이맘때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려 경제기획원을 만들고 여기에 재무부의 예산 편성권까지 옮기며 권력을 몰아줬다.
파면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기재부 경제 관료들을 “슈퍼 엘리트”라고 불렀다. 지난 20대 대선 당시 전두환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했던 김재익 경제수석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도 그다. 경제는 최고 전문가인 관료 집단에 맡기면 된다는 논리다.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최상목 경제수석 라인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슈퍼 엘리트들은 정작 제 역할을 못 했다. 한국 경제의 실질 성장률(전기 대비)은 지난해 1분기 1.3%에서 2분기 -0.2%, 3·4분기 0.1%, 올해 1분기 -0.2%로 바닥을 기었다. 추경호 의원은 12·3 불법 비상계엄의 해제를 방해한 내란 공범 혐의를 받는다. 한덕수 전 총리는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며 환율 불안을 부추기고, 최상목 전 부총리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모르쇠했다.
과거 한국 경제라는 백지장에 관치의 칼을 휘두르며 밑그림을 그렸던 엘리트 경제관료의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 새 길을 열어야 할 공직의 후배들에게 이들은 부끄러운 초상을 남긴 게 아닌가.
박종오 경제산업부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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