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조선의 3대 명절, 단오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에 지내는 한국 고유의 명절이다.
순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 하며, 예로부터 농경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어왔다. 단오라는 명칭 외에도 천중절, 중오절, 단양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왔다. 조선 중종 13년에는 설날과 추석과 함께 국가의 3대 명절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단오는 그만큼의 무게를 지니지 못한다. 달력에는 여전히 기념일로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 단오의 의미와 풍속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외려 중국의 단오절이 세계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대조를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단오는 분명히, 그리고 고유하게, 다른 뿌리에서 출발한 명절이다.
중국의 단오가 시인 굴원의 죽음을 기리는 제사에서 유래했다면, 우리나라의 단오는 공동체의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에서 비롯됐다. 삼국시대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5월이 되면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난 뒤 들판에 모여 하늘에 제를 올리고 하루 종일 노래하고 춤추며 어울렸다.
정사 삼국지의 위지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삼한의 백성들이 5월이면 밤낮없이 모여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풍요를 기원했다고 기록돼있다. 이들은 손과 발로 장단을 맞추고 줄을 지어 함께 움직였는데, 이것을 보면 단오가 때 되면 찾아오는 절기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하나의 문화적 퍼포먼스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신라에서는 '수릿날'이라 불렀으며, '삼국유사'에도 이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단오의 풍습은 특히 여성들의 세시풍속과 맞닿아 있다. 단오 무렵이면 여인들은 창포에 머리를 감았다. 당시 사람들은 창포를 귀신을 쫓고 액운을 막는 식물로 여겼다.
삶아낸 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윤기 나고 여름내 더위도 견딜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머리에 창포 뿌리로 만든 비녀를 꽂는 '단오장' 풍습도 전해진다. 단옷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그네뛰기'는 남녀가 접촉을 꺼리는 조선 사회에서 여성들이 드물게 몸을 활짝 펴고 하늘로 도약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씨름이나 활쏘기 같은 민속놀이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씨름은 단오의 대표적인 경기였으며, 이긴 이에게는 소를 상으로 주기도 했다.

단오의 풍경을 가장 생생하게 전해주는 작품은 단연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이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이 그림에는 단오를 즐기기 위해 계곡으로 놀러 간 여인들이 등장한다. 시냇가에서 몸을 씻고, 그네를 타고, 멱을 감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그림의 한쪽에는 동자승들이 몰래 여인들을 훔쳐보는 장면도 포착돼있어, 단오가 갖는 일탈적이고 유희적인 성격을 잘 드러낸다. 단오가 제사나 풍속의 날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이 분출되는 날이기도 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현재 단오의 전통을 가장 온전히 이어가고 있는 지역은 강릉이다. 강릉단오제는 지방 축제를 넘어, 전통과 신앙, 놀이와 공동체 의례가 모두 어우러진 국내 유일의 종합 민속축제다.

그 기원은 대관령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산신제에서 찾을 수 있으며, '성소부부고'에서는 이 산신이 김유신 장군이라고 기록돼있다. 또 일각에서는 동예의 무천(舞天)과 같은 하늘신 숭배의 잔재가 단오로 이어졌다고 해석한다.

제례와 굿, 가면극, 민속놀이, 거리행렬이 결합한 강릉단오제는 단오가 지닌 복합적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11월 2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단오제가 보유한 종합성,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 그리고 전승 방식의 독창성이 인정받은 것이다. 등재 이후 강릉단오제는 매년 더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단오제는 단오 하루만 치르는 것이 아니라, 한 달 전부터 의례가 시작된다. 음력 4월 5일에는 '신주미 봉정'과 '신주 빚기'가 열린다. 단오신주로 쓰일 술은 칠사당에서 담그며, 사용되는 쌀은 모두 강릉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로 모인다.
![[모멘트] 강릉단오제 신주 빚기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인 강릉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주 빚기 행사가 2일 옛 관아인 강릉 칠사당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신주를 빚을 단지를 소독하는 장면이다.
2025 강릉단오제는 '스무 살, 단오'를 주제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선정 20주년을 기념해 강릉시 남대천 행사장에서 진행된다. 2025.5.2 [THE MOMENT OF YONHAPNEWS]
yoo21@yna.co.kr (끝)](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14/yonhap/20250514095414748iqqs.jpg)
수천 세대가 참여해 수백 가마니의 쌀을 모으는 이 과정은 단오제가 구경하는 축제가 아니라, 시민 모두가 만드는 행사임을 보여준다.

단오의 술로는 창포주가 있다. 창포주 역시 단오의 상징이다. 고려 말의 문인 정몽주와 이색의 시에도 창포주의 풍미와 기운이 나온다. 단오의 풍속으로서의 창포주의 깊은 역사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최근에는 창포주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전통 막걸리 '훌훌'이 등장했다. 2022년 창업한 강릉의 진정브루잉에서 단오를 기념해 한정판으로 만든 이 창포 막걸리는 찹쌀과 누룩, 창포 뿌리 추출물만으로 빚는다. 현대의 단오가 전통을 토대로 새롭게 변주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단오는 이렇게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금 우리의 삶 속으로 흘러들고 있다.
올해 단오는 5월 31일이다. 특히 2025년은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해 '스무 살, 단오'라는 주제로 27일부터 6월 3일까지 강릉 남대천 일원에서 단오제가 열린다.

20년 동안 하나의 명절을 지켜낸 이들의 자긍심과 노고를 기리는 자리이자, 잊혀 가는 우리의 명절을 다시금 소환하는 시간이다.
단오란 결국, 사람들이 모여 하늘에 기도하고, 몸을 씻고, 노래하고 춤추는 날이었다. 기원과 정화, 일탈과 공동체가 만나는 하루. 오월의 햇살 아래 강릉에 가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단오는 아직도 살아 있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창포 술을 마시며 강릉단오제를 누리는 날이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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