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으로 판사들은 권력자의 관점에 순응합니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5. 5. 1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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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

한스 페터 그라베르 지음, 정연순 옮김, 진실의힘 펴냄

“전반적으로 판사들은 권력자의 관점에 순응합니다.”

법치주의와 사법부의 역할을 연구해온 저자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의 실상을 탐구한다. 많은 나라에서 사법부는 정권의 억압을 정당화하고 타협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시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법률가들 상당수는 법원을 통한 아파르트헤이트의 확립과 옹호에 적극 가담했다. 독일에서 유대인과 독일인의 혼인을 금지한 뉘른베르크 혈통보호법이 제정되기 전에 이미 독일 대법원은 ‘혼혈 결혼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미국·영국 같은 자유주의 사회의 판사들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은 모든 국가와 사회에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 존재임을 일깨운다.

 

강남

김시덕 지음, 인플루엔셜 펴냄

“결론부터 말해, 강남은 굉장히 역동적인 공간입니다.”

강남에 대해 대중이 갖는 이미지는 다소 뻔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선에서 박근혜 정부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제19대 대선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진보 후보에게 표를 던져준 적이 없는 동네. 최근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제를 번복하는 과정에서마저 압도적인 부동산 불패 신화를 다시금 보여준 한국의 ‘베벌리힐스’. 도시 문헌학자 김시덕은 그 오랜 이미지를 “강남은 실패한 계획”이란 말로 산산조각 낸다. 6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농촌 강남에서 시작해 오늘날 진행 중인 강남 대규모 개발사업에 이르기까지, 강남의 과거-현재-미래를 두루 살핀다.

 

자유의 길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강국 옮김, arte 펴냄

“늑대의 자유는 양에게 죽음을 의미한다.”

12·3 내란의 주동자와 이를 옹호한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자유’를 입버릇처럼 떠들어대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는 이 책에서 경제학 개념들을 능란하게 활용하며 ‘자유’라는 가치의 역사와 그 쓰임새를 근본적으로 성찰한다. 그에 따르면, 특정 세력이 ‘자유’란 용어를 독점하고 왜곡해온 가운데 소수 특권층의 자유와 부(富)는 전례 없이 비대해졌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론 불평등과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대다수 시민들의 자유가 오히려 축소되었을 뿐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권력의 균형에 기초한 ‘진보적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스티글리츠는 주장한다.

 

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

“모든 게 그저, 내가 갑자기 그것들을 먹기에는 너무 선량해졌다는 이유만으로요.”

직장 동료들과의 크리스마스 회식. 작년과 같은 장소, 같은 음식이지만 달라진 게 있다. 오리 구이를 먹으려는 순간 경멸과 분노가 쏟아진 것이다. 육식이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린 세상, 그저 소시지 한 접시면 족하던 주인공은 등 떠밀리듯 채식에 발을 들인다. ‘혹여 멀리서 고기 냄새가 바람에 날려오지 않을까’ 싶어 미친 사람처럼 길가를 서성이는 이 ‘가여운’ 채식인에게 접근한 ‘채식 카르텔’의 우두머리 ‘톰 두부’와 ‘육식 카르텔’의 수장 ‘육수맛내기69’는, 각자의 논리를 앞세우며 주인공을 극단으로 몰아간다. 짧은 분량, 익살스러운 문장, 흥미진진한 구성이 이끄는 끝에 ‘음식의 윤리’라는 무거운 질문이 남는다.

 

우리가 말하지 않는 지구

김가람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환경’이 중요한 화두가 아닌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꿈꾼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지 않지만, ‘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읽으면 좋은 책이다. 지금 이 시간, 지구 각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적었다. 프랑스에서 팔고 남은 식품을 버리는 마트는 벌금을 문다. 가뭄을 맞은 남아공에서는 시민과 방문객의 물 사용량을 하루 50L로 제한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환경스페셜〉 등의 PD 출신인 작가는 세계 여러 도시를 방문하며 직접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기후변화가 구체적으로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감하게 만든다. ‘한국의 우리는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근거 없는 낙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죽은 다음

희정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장례에는 ‘엔딩 플래너’가 등장하게 되었다.”

죽음과 삶은 거울이다. 단독적인 사건처럼 보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비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 안에는 죽음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장례 문화에도 ‘유행’이 있다. 달라진 가족 구성이 상조회사를 등장시켰고, 장례도 상품이 되어 외주의 영역이 되었다. 르포 작가인 저자가 직접 장례지도사가 되어 죽음 산업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장례 노동의 낙인과 역사를 두루 톺아가며 우리가 빈소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죽음의 풍경을 다각도로 기록했다. 애도와 의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고민과 시도도 꼼꼼히 살폈다. 죽음보다 저자를 놀래킨 것은 망자의 ‘늙은 몸’이었고, 장례산업을 지탱하는 몸 역시 늙은 몸이었다. 귀신보다 시취가 무섭고, 시취보다 돈이 무서운 이들이 장례산업의 밑바닥을 촘촘히 받치고 있는 현실을 깊은 눈으로 살폈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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