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누에고치에 골프 묘약이!

[골프한국] 비행기를 타고 수도권 상공을 지나다 내려다본 지상의 골프장은 보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다를 것이다. 귀한 수림(樹林) 공간을 훼손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고층 아파트가 임립한 도회에서 그나마 녹색공간을 지키는 구실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골프의 밀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내 눈에는 골프 코스가 산자락에 누에가 누워 있는 듯 보인다. 거대한 녹색 누에들이 숲을 휘감거나 호수를 끼고 자연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으로. 인간들은 조용히 누워 있는 누에를 정복하겠다고 기를 쓰고 덤벼들지만 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14개의 창칼로 무장한 인간 떼들, 떼라고 해봐야 기껏 네 명으로 이뤄졌지만, 가쁜 숨 토하며 깃발 펄럭이는 정수리에 올라 하얀 알을 작은 구멍에 넣느라 애쓴다. 네 명의 골퍼들이 애태우다 기뻐하거나 절망해도 누에들은 미동도 없다. 깃발 꽂고 떠날 때도 누에들은 모르는 체 돌아누워 자연과 희롱할 뿐이다.
마지막 홀을 벗어날 때마다 골퍼들은 오늘 하루도 무모하게 덤벼들었음을 깨닫지만 18마리의 누에를 정복하겠다는 욕심은 내려놓지 못한다. 아마도 골프채를 놓을 때까지 도전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또한 골퍼의 숙명일 터이다.
누에의 일생을 살펴보면 골프 코스가 누에처럼 보이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다.
누에나방이 낳은 알이 부화한 유충은 개미누에 또는 털누에라고 부른다. 길이는 3mm미만. 이때부터 뽕잎을 열심히 먹고 성장하며 2~3일에 한 번씩 허물을 벗는다. 한번 허물 벗는 것을 1령(齡)이라 한다. 4번의 허물을 벗고 5령째가 된 누에는 길이가 8cm까지 자란다.
부화한 지 약 7주 후 5령 말이 되면 누에는 더 이상 뽕잎을 먹지 않고 실을 토해내 고치를 짓기 시작한다. 누에 한 마리가 토해내는 실의 길이는 1200~1500m에 이른다. 고치를 완성하면 70여 시간 후 번데기로 변하고 다시 12~16일 후 나방이 되어 누에고치를 찢고 밖으로 나온다. 나방은 입이 퇴화해 먹지는 못하고 교미만 하고는 일생을 마친다. 번데기가 나방이 되기 전 인간들은 고치를 삶아 번데기를 꺼내 식용으로 이용한다.
골프야말로 철저하게 누에의 인내를 요구한다. 누에는 허물을 벗으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 과정을 하나라도 생략하고선 제대로 된 고치를 만들 수 없다. 부지런히 뽕잎을 먹고 4번의 허물을 온전히 벗어야 실을 토해내 고치를 완성할 수 있다.
누에고치의 실은 바로 골프의 진수를 상징한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많은 골퍼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허물벗기 즉 단계적 수련을 게을리하면서 '골프 고치'를 지으려 한다. 온전한 고치가 만들어질 리 없다.
눈부신 계절을 맞아 누에를 정복하려 달려들지 말고 누에의 인내를 배워 보자. 부지런히 뽕잎(연습)을 따먹고 '골프 고치'를 완성하겠다는 꿈을 가져보자.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Copyright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