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의 여행, 타이완의 창문을 가져올 수는 없어서
아무리 맥시멀리스트라지만 여행지에서 창문을 떼어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타이완에 가보기 전까지는 내가 이토록 타이완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때 나는 홍콩에 흠뻑 빠져 있었다. 매년 홍콩을 방문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길 정도로 홍콩을 사랑했다(막상 여행을 다녀온 지는 꽤 되기는 했지만). 홍콩을 너무나 좋아했기에 막연히 비슷한 감흥을 느낄 거라고 여겨졌던 타이완은 뒷전으로 두고 있었다. 훨씬 더 가깝고 언제든 갈 수 있을 거 같아서 괜히 더 그랬다.
몇 해 전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이고 있을 때, 지인이 타이완의 남쪽부터 찬찬히 훑고 올라오다가 타이베이에서 여정을 마무리하는 여행을 떠날 예정이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 이거다, 여기다! 타이베이에서 만납시다, 약속을 하고 자연스레 나의 첫 타이완 여행지는 타이베이가 되었다. 그러고 나선 직접 경험한 타이베이의 매력에 또 홀딱 반해 팬이 되어 버렸다. 여길 이제서야 처음 오다니.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묻는다면 그저 내가 좋아하는 '그 느낌'이 이 도시에 있었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이 제일 적절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런 대답을 하면 친한 친구마저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일 것이므로 조금 더 자세히 묘사를 해보자면, 우선 타이완에는 내가 홍콩에서 사랑해 마지않는 '와글와글 도심 정글'의 바이브가 있다. 물론 홍콩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그래서 더 좋았다. 개성 강한 번잡한 도시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무성한 초목들. 자기주장 강한 풀과 꽃, 커다란 나무가 온 사방에 있는 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길을 가운데에 두고 선 가로수가 무럭무럭 자라나 마치 터널을 이룬 듯한 길을 정말 좋아하는데, 타이베이는 그런 '나무 터널 길'이 디폴트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 그저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고온다습한 기후를 질색하는 사람이 5월 중순의 타이베이를 쉼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동기 중 하나였다.

다음으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음식. 하루에 간식과 야식 포함해 다섯 끼 정도는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차를 베이스로 하는 맛있는 음료는 또 왜 이리 많은지! 조금 느끼한 식사 후에 상큼한 금귤이 들어간 차 음료를 한 잔 마셔 주면 자연스럽게 다시 다음 끼니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점을 찍는 건 타이완 특유의 레트로한 미감이다.
내가 가끔 서울에 품는 불만 중 하나는(서울 토박이 출신이 아닙니다. 서울을 향한 나의 애증을 이해해 주십시오) 낡고 오래된 것만이 간직한 반짝임을 싹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그럴싸해 보이는 새것을 지어내서 몰개성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좋아했던 공간을 다시 찾았을 때, 그 흔적을 찾을 수도 없이 몽땅 사라져 버린 광경을 당황스러울 정도로 여러 번 목격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타이완은 꽤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업을 펼치고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건물에 새로운 쓸모를 찾아주는 걸 감각적으로 잘 해내고, 옛것과 새것이 곁을 두고 있어도 어색함 없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다. 각기 다른 모습의 건물들이 다정하게 늘어선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그렇게 오래된 건물에 자연스레 녹아든 카페와 편집숍, 전시장 등등을 돌아다니다 유난히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레트로한 문양이 담긴 불투명한 유리창이었다. 과거 우리나라도 이런 식의 무늬 유리를 사용한 집들이 제법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당시의 유행이었겠지. 요즘에도 간혹 복고풍의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 일부러 무늬 유리를 쓴 공간이나 가구를 본 적은 있었는데 타이완에서 본 건 흉내 낸 것이 아닌 진짜의 그것이었다.
한 번 눈에 들어오고 나니 그런 창문이 있는 집이나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반가웠고, 심지어는 길 건너에 건물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 집 창문도 저런 유리로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아무리 그래도 창문 유리를 가져올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그러던 찰나, 이 예쁜 유리창을 동그랗게 재단해 놓은 듯한 느낌의 컵 받침을 어느 소품숍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꽂힌 자에게 길이 있나니, 이렇게 럭키비키 할 수가! 컵 받침의 상품 설명을 살펴보니, 이 무늬 유리는 미적인 감각을 더할 뿐만 사생활 보호에도 탁월해서 과거 타이완의 창문에 흔히 사용되던 재질이었다고 한다. 레트로한 무늬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이를 컵 받침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고안해 냈고, 유리가 아닌 폴리에스터 수지로 만들어서 깨질 염려 없이 튼튼하게 쓸 수 있게 했다고.
덕분에 무미건조한 나의 일상에 타이완의 복고적인 아름다움을 한 스푼 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 것만 사 왔네. 다시 타이베이에 간다면 이걸 좀 더 사 와서 주변에 돌리며 오직 타이완에만 있는 '느낌적인 느낌'의 매력을 다시금 설파하고 싶다.
*김나영 작가의 맥시멀리스트 여행
여행이 일의 한 부분이던 시절, 다채로운 도시들을 탐험하며 부지런히 작은 물건들을 사 모았다. 같은 종류만 고집하며 모았으면 나름의 컬렉션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후회를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홀딱 반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사물 한정 금사빠의 사는(Buy) 이야기.
글·사진 김나영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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