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마을마다 얽힌 고유한 이야기…주민이 부르는 ‘재즈’로 담아내
2018년 재즈 복합문화공간 문열어
지역 이야기 담은 ‘로컬 송 북’ 발매
삶·역사·노동요까지…음악으로 기록
주민들 작사·보컬 참여, 정서 살려내
‘관객 개발’ 통해 대중화 적극 나서
재즈를 지역민의 삶 속으로 이끌어 충북>
나라마다 국가가 있고, 각 학교엔 교가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마을엔 노래가 있을까. 충북 충주엔 마을마다 노래를 지어주는 ‘재즈의 마법사’가 있다. 문화예술 전문기획사 ‘살로메’ 의 김세영 대표는 2020년부터 ‘로컬 송 북(Local Song Book)’ 프로젝트로 마을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가득 담은 재즈를 만들고 있다.
“재즈는 자유예요. 다양한 장르와 잘 어울리고, 무엇과도 섞일 수 있죠. 기존의 멜로디에 새로운 코드와 화성을 붙여 편곡하면 늘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와요. 그게 재즈를 사랑하는 이유 같아요.”
경기 성남 출신인 김 대표가 충주에 정착한 건 2014년 겨울이었다. 연고도 없던 충주로 온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살고 싶었다. 자녀가 자라고 여유가 생기자 그는 2018년 주민과 재즈를 나눌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살로메를 열었다. 음악을 매개로 주민에게 다가가자 마을에 얽힌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살로메 팀은 이 대화를 재즈로 기록하기로 했다.
첫 앨범 ‘로컬 송 북 충주’는 과수원이 많던 연수동에서 시작한다. 이어 2021년엔 교현국민학교 가는 길의 정취 등 교현동 노래가 담긴 ‘충주 12동네 노래’, 2022년엔 은행나무와 함께한 세월을 그린 동량면 노래가 수록된 ‘충주 13읍면 노래’가 나왔다. 주민이 작사와 보컬에 참여한 노래엔 각 마을의 색채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최근엔 양조장 등 충북의 지역상점에 노래를 선물하며 지역과 주민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마을 노래는 보통 서너번의 만남으로 완성된다. 첫 만남에서 주민들이 털어놓은 마을 전설이나 시집살이 경험 등은 가사의 재료가 되고, 여기에 김 대표의 남편 이창훈씨 등 살로메 팀이 음을 입힌다. 이후 주민이 목소리를 더해 녹음을 마친다. 김 대표는 “엄정면 도룡마을에서 만난 로컬 송 북 프로젝트의 역대 최고령 가수 이계운 할머니(92)가 기억에 남는다”며 “독립운동가 집안에 시집와 산전수전 다 겪은 그 시절을 들려주는데 그 이야기를 놓칠 수가 없더라”고 회상했다. 김 대표의 작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충주의 노동요로 이어졌다.
“흑인 노동요에서 시작된 블루스는 우리 노동요와 놀랍도록 닮았어요. 블루스의 ‘콜 앤드 리스폰스(Call and Response·부르고 응답하기)’ 방식이 노동요의 ‘매기고 받는 소리’와 연결되는 걸 발견했을 때, 먼 나라의 음악이라도 하나로 묶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김 대표는 ‘그 당시 모내기를 하며 신명나게 노래하는 재즈 악단이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해 ‘중원마수리농요’를 변주한 ‘중원 워크송’을 2023년 기획했다. 처음에 살로메 팀은 노동요가 전승되는 마을에 직접 찾아가고 문헌도 살피며 노래를 익혔다. 그런 다음 기존의 멜로디는 변주하고, 가사만 남아 있는 곡엔 음을 붙였다. 봄철 모를 찌며 부르는 ‘절우자’, 베 짜며 부르던 ‘베짜기 노래’ 등이 재즈로 재탄생했으며 같은 해 10월 충주 국악문화공간 우륵당 무대에도 올랐다. 한 주민은 “어릴 적 자주 듣던 노동요가 재즈로 바뀌니 새롭게 느껴진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밖에 김 대표는 ‘관아골1930’ ‘우륵, 그리움의 노래’ ‘남한강의 노래’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관아골 1930’은 충주 주민 배우단 10여명과 함께 만든 낭독·음악극으로, 일제강점기 충주의 수탈사를 무대 위에 올린 작품이다. 주민 배우단은 2022년 공연을 시작해 ‘지역문화콘텐츠특성화사업’에서 ‘지역문화진흥원장상’을 받기도 했다. 그후 2023년 광화문 ‘문화가 있는 날’ 10주년 축제에도 참여해 충주의 역사를 전국에 알리고 있다.
“처음부터 재즈 애호가인 사람은 없어요. 저는 지역 안에서 적극적으로 ‘관객 개발’을 합니다. 어린이에겐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재즈야 놀자’를, 어른에겐 재즈 뮤지션의 생애 등을 소개하죠. 재즈를 가둬두는 게 아니라 사람, 더 나아가 지역과 연결될 수 있게 삶 속으로 데려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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