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청사진' 쏟아냈지만, 로드맵·재원은 흐릿... 다양성 가치도 실종[H공약체크]
조기 대선 탓 주먹구구식 플랜
AI 강국 등 '선언'만, 로드맵은 부재
연 수조원 필요한 '퍼주기 공약'에도
재원 대책도 뾰족한 답 없이 '무책임'
성평등 공약, 별도 항목에서 빠져 후퇴
사회적 약자, 다양성 가치 실종 우려
주요 정당 대선 후보들이 10대 공약을 발표하며 장밋빛 청사진을 쏟아냈지만, 구체적 로드맵도 재원 대책도 부족해 주먹구구식 공약(空約)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당장 후보들이 내건 AI(인공지능) 3대 강국, 아동수당 확대로 국가 돌봄 확대, GTX(광역급행철도) 전국 광역화 등 공약만 보면 달콤 그 자체다. 그러나 목표만 있고 방법론은 제시하지 못했다. 수십조 원 예산 투입이 뻔한데 재원 대책도 흐릿하다. 주로 경제와 정치의 거대 담론에 집중하면서 성평등과 장애인 등 우리 사회 다양성의 가치를 뒷받침할 공약은 뒤로 밀려난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인수위 없이 정권이 출범하는 만큼 정당과 후보 스스로 여느 대선보다 공약 실현성 검증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란히 제시한 'AI 3강'… 방법론은 모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12일 공개한 10대 공약 상위권에 'AI 3강' '글로벌 소프트파워 빅5 문화강국', '기업하기 좋은 나라' 'AI·에너지 3대 강국' 등 거창한 목표를 전면 배치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세부 과제로 민주당은 '민간 투자 100조 원 시대'와 'AI 고속도로 구축' 등을 제시했다. 국민의힘은 'AI 청년 인재 20만 명 양성', '민관합동펀드 100조 원 조성'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선언적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3년 전 대선 당시와 비교해도 구체적 각론은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당시 민주당은 '디지털 전환'을 위해 135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비 85조원 충당을 숫자로 명시했다. 국민의힘도 당시에는 '원천기술 선도 국가' 공약을 내세우면서 대통령 직속 민관 과학기술위원회, 개방형 융합연구플랫폼 등을 방법론으로 제시하며 공을 들인 것과 차이가 있다.
돈 들어가는 건 수조원인데, 거꾸로 감세
재원 조달 방안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당장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제시한 '우리아이 자립펀드', '우리아이 첫걸음 계좌'를 도입하려면 연평균 7조1,000억 원이 든다는 추산(국회예산정책처)이다. 민주당 공약대로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18세 미만으로 확대하는 데는 연평균 4조8,000억 원이 더 필요하다. 이처럼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증세 없이 감세 기조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다. 국민의힘은 근로소득 기본공제를 현행 150만 원에서 300만 원 확대를 내걸었는데, 이렇게 되면 연간 9조5,000억 원가량 세수가 줄어들게 된다.
그럼에도 양당 공히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민주당은 모든 공약에서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 '정부재정 지출 구조조정, 연간 총수입 증가분으로 충당'이라고만 적어냈다. 국민의힘도 '기존 예산 재조정, 국비, 지방비 활용'을 제시하는 선에 그쳤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13일 "과거엔 공약의 예상 효과와 재원 확보 방안 등이 구색 맞추기로 거론이 되기라도 했지만, 이번엔 구체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윤석열 정부에서 큰 폭의 세수 펑크가 난 상황이라, 재원 마련 대책이 더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각론' 후퇴한 성평등 공약... 논쟁적 이슈 피해
다양성의 가치가 후퇴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특히 여성 공약이 대표적이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10대 공약 가운데 3번째로 '여성이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 실현'을 목표로 명시했다. 하지만 이번엔 성평등 항목이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 대신 여성 소상공인 안전 강화, 여성이 일하기 좋은 사회 조성 등 분야별로 걸치는 데 그쳤다. 국민의힘의 경우 '여성희망복무제 도입'이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여성 키워드였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윤석열 정부가 내세웠던 여성가족부 폐지를 이어받았다. 민주당은 '장애인권리보장법'과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체계 구축 등을 약속했고, 국민의힘은 '장애인 생애주기별 지원 강화'를 새로 담았다. 개혁신당에선 장애인 관련 공약도 찾아볼 수 없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젠더 이슈 등 사회적 갈등이 큰 의제를 애써 피하려는 정략적 접근"이라고 꼬집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구현모 기자 nine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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